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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윤의 현장에서] 구축 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전쟁

“거실 창문 바로 앞에 전기차 충전기가 생겼어요. 밤낮없이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싫지만 화재가 날까 너무 불안합니다. 1층에 사는 게 죄인가요?”

최근 경기도의 한 아파트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해당 아파트는 정부의 전기차 충전기 의무설치법에 따라 올해 지상주차장에 12대의 충전설비를 새롭게 들이고 막 가동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1층 주민이 피해를 호소하고 나서면서 사용이 전면 중단됐다. 아파트는 관계자는 “전기배전반이 있는 곳에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업체의 말에 따라 충전구역을 정했는데 하필이면 이곳이 일부 세대와 맞닿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1층 입주민은 화재위험과 소음 등의 불편을 왜 일부 세대에서만 감수해야 하냐고 울분을 토한다. 아파트 측은 방법을 모색했지만 설치된 충전기를 옮기는 데에만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며 임시방편으로 가급적 해당 구역의 충전기를 이용하지 말라는 공지를 냈다. 대당 수백만원을 들여 설치한 충전기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정부가 지난해 1월 28일 시행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법’으로 인한 아파트 단지 내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100세대 이상의 아파트의 경우 오는 2025년 1월 28일까지 신축 건물은 총 주차 대수의 5%, 기존 건물의 경우 2% 이상 규모로 전기차 충전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구축 아파트의 경우 정부가 세운 기준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기존 주차장을 활용해 충전기를 설치해야 하는 만큼 일반 차량의 주차공간을 빼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차량과 전기차 차주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 안전 등을 이유로 ‘내 집 앞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법안이 정착되려면 보다 세밀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해당 아파트 주민의 전기차 보급 수준, 아파트의 주차 대수와 유용 부지 등 각 아파트가 처한 환경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 내 설치 위치에 대해서도 주거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각종 갈등과 민원에 대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책임 있는 대책방안도 내놔야 한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따라 전기차 보급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확대를 위해 전기차 충전소 구축 역시 필수불가결하다. 충전기를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파트라는 점도 반박의 여지가 없다. 주거공간인 만큼 머무는 시간이 길어 충전에 용이하고 상대적으로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다만 전기차 보급과 정착을 위해 시작된 아파트 내 충전기 설치 의무화가 오히려 ‘전기차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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