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인터넷’에 견주고(빌 게이츠 “인터넷에 버금갈 발명”), 누구는 ‘아이폰’에 빗댄다(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이미 세상을 뒤집어놓은 아이폰 출시와 비교된다”).
생성형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얘기다. 지난해 12월 선보인 후 석 달도 채 안 돼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생성형 AI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지 않은 분야가 없다.
챗GPT로 기선을 잡은 미국 MS(마이크로소프트)에 구글이 맞대응에 나섰다. 중국의 바이두가 가세했고,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도 뛰어들면서 ‘AI 세계대전’이 순식간에 발발했다.
캐나다의 SF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이라는 말로 유명하다. 미래가 시간상으로는 성큼 다가왔으나 공간적으로는 아직 덜 전파됐다는 의미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래서 ‘미래’란 단어를 ‘챗GPT’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챗GPT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러고는 곧바로 널리 퍼졌다(The Chat-GPT is already here ; It’s distributed immediately)”.
놀라운 일이다. 이제 AI가 인간 대신 글을 쓰고,노래를 만들며 그림을 그린다. 인간 대신 일을 하고 시험을 치른다. 인간 대신 진료하고 감사(회계감사)하고 변호한다. ‘인간 같은 기계’다.
그런데 무섭다. AI가 완벽하지 않아서다. 학습한 것까지만, 배운 그대로 말하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오류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2021년 중반까지만 학습한 챗GPT는 한국의 대통령이 여전히 ‘문재인’이라고 답한다. 텍스트에 특화했기에 단순한 곱셈에도 젬병이다. 애교로 봐줄 만한가?
그럼 이건 어떤가. 챗GPT 대항마로 구글이 내놓은 생성형 AI ‘바드(Bard)’는 시연회에서 “우주망원경 제임스웹이 최초로 태양계 밖의 행성을 찍었다”는 오답을 내놔 망신살이 뻗쳤다(※정답은 유럽 남방천문대가 칠레 남부 고도 2635m 지점에 설치한 초거대 망원경 VLT다). 이 해프닝으로 구글 주가가 급락해 시가총액 127조원이 하루 사이에 증발했다. AI의 실수는 애교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실수가 의료 분야에서 일어난다면 재앙이다.
이런 AI에 인간이 무작정 매달리면 인간은 놀라움, 무서움을 넘어 무기력 단계로 진입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뭐든 AI에게 시키면 되니까. 이건 ‘기계 같은 인간’이다.
AI의 큰 흐름에 뒤처져도 안 되지만 매몰돼서도 안 된다. 케인스가 경제를 움직이는 하나의 요인으로 꼽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AI에는 없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이 시대 최고의 생산요소라고 언급한 ‘창의적 아이디어’ 역시 AI에는 없다.
‘인간 같은 기계’는 무섭고, ‘기계 같은 인간’은 무기력하다.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야 한다. AI 시대에 야성적 충동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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