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 가족이 사는 강원도 산골마을은 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한 주민이 마을 뒤편에 있는 축사를 더 크게 증축하기로 하자 그동안 직·간접적인 피해를 감수해온 이웃 주민이 크게 반발하면서 소송에 이어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마을 외곽에 오래 방치돼온 또 다른 축사 역시 새 주인이 운영을 재개하면서 비슷한 갈등을 빚고 있다. 주변 전원주택단지 내 몇몇 귀촌인은 참다못해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갈등 사례는 또 있다. 멀쩡한 마을길을 트랙터로 막아버리거나 심지어 포장된 길을 파헤치기도 했다.
필자 동네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전국의 농촌 어디서나 유사한 갈등이 난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골 갈등은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간 빚어지는, 소위 텃세만 있는 게 아니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 따라 원주민끼리 또는 귀농·귀촌인끼리의 갈등도 다반사다.
시골 갈등의 주원인은 무엇일까. 필자가 13년째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바로는 결국 ‘돈’ 때문이다. 명예욕과 권력욕도 빼놓을 수 없다. “아니, 정 많고 인심 좋은 시골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농촌 공동체문화 운운하지만 너와 나만 있을 뿐 ‘우리’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필자도 처음엔 착각했다. 도시에서 귀농을 준비할 때만 해도 농촌은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무위(無爲)’의 공간인 줄 알았다. 지금도 많은 귀농·귀촌 교육에서는 마치 농촌은 무위인 것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농촌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인위(人爲)’의 공간일 뿐이다. 단지 사람이 적게 살고 있을 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돈·명예·권력을 향한 집착과 탐욕, 그것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도시 못지않다.
3월 8일 시행하는 농협·수협·산림조합 등 조합장선거는 물론이고 마을이장이나 부녀회장 선출을 놓고서도 마을주민 간 패가 갈려 반목하기 일쑤다.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단체나 조직이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축하 현수막이 내걸린다. 이런저런 ‘회장님’ ‘위원장님’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정의와 공정’ ‘공동체 복원’ ‘상생 발전’ 등 내거는 명분이나 목적은 그럴싸하지만 결국에는 끼리끼리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압력단체로 행세하기 위해 또는 이권을 따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곤 한다. 일부 시골 토호세력과 유지들이 보이는 기득권 집착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 일부 귀농·귀촌인의 이기적인 행태 또한 빈축을 사기는 마찬가지다.
필자도 그랬지만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귀농 또는 귀촌하려는 사람들이 갖는 큰 착각 중 하나는 농촌과 자연을 거의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농촌은 결코 무위가 아니다. 다만 농촌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니 무위로 통하는 길은 가깝고 빠르다. 인위를 내려놓기만 하면 바로 무위로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은 왜 귀농·귀촌 하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십인십색이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연이 선물하는 힐링과 치유, 행복을 얻기 위해서’가 깔려 있지 않을까. 엄마의 품속 같은 자연에서 누리는 평온, 신이 내린 축복의 향유 등등. 이를 위해 도시를 내려놓고 전원을 택했다면 인위농촌이 아닌 무위자연을, 더 나아가 영적 차원인 ‘신위(神爲)’의 세계를 소망함이 어떨까.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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