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결기를 가지고 출발했던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정부에 방향타를 제시하겠다며 여당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지난 8일 “국민연금 모수(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개혁은 정부 몫”이라고 했다.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수급률), 보험료율(소득 대비 보험료) 조정은 연금재정 안정화를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히는데 사실상 국회가 손을 떼고 정부에 떠넘긴 것이다.
특위는 대신 장기적인 구조개혁안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국민연금을 기초·퇴직·직역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과 연계해 개혁하는 작업이다. 공무원, 군인 등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아 국민연금 모수 개혁보다 몇 배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고난도 과제다. ‘발등의 불’인 국민연금 모수 개혁 초안도 못 내면서 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안을 내겠다는 건 걷지도 못하면서 뛰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지금 껄끄럽기만 한 연금개혁을 뒤로 미루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에 따라 국회 특위안을 단초로 여론을 수렴해 올해 10월에 최종안을 내겠다는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일정도 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연금개혁의 총대를 메야 할 여당이 뒤로 빠지는데 야당이 홀로 정치적 부담을 질 리 없다. 연금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9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문제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연금특위나 민간 자문위 활동에서 쉽게 합의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며 “정부가 10월에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내면 국회가 받아서 최종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연금개혁이 국회와 정부 간 핑퐁게임처럼 되고 있다.
연금개혁이 이처럼 뒤뚱거리게 된 데에는 대통령실의 책임도 크다. 보험료를 더 내고(9→15%) 소득대체율은 그대로(40%)인 국회특위 민간자문위 제안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자 내년 총선 유불리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대통령실발(發)로 흘러나왔다. “연금개혁은 내년 총선 이후 다수당이 되면 밀어붙일 테니 논의에 너무 속도를 내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국민적 눈높이’를 들어 개혁을 회피했던 문재인 정부와 다를 게 없다.
지난 정부에서 연금개혁을 미룬 결과, 올해 이뤄진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 고갈 예상시점이 2055년으로, 2년 더 빨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은 인기가 없어도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여당과 대통령실의 기류를 보면 올 10월에 정부 최종안이 나올지 의문이다. 표심을 좇는 게 체질인 국회에 맡길 일이 아니라면 대통령과 정부가 연금개혁을 주도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