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너희들)은 참 그대로다. 우정도 그대로고. 부럽게....’
금융당국과 금융사의 앙상블이 아찔하다. 관치(官治)·비(非)관치 논란은 이미 지나간 ‘아주 오래된 소문’일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살아 있다. 둘 중 피해자는 없다. 금융사는 정부 눈치를 보면서도 예대금리차로 ‘돈잔치’를 한다. 당국도 금융그룹 회장 인사 시즌마다 내로라하는 전직 관료를 꽂아넣느냐를 두고 비판받지만 그때뿐이다. 포장은 공조·파트너십으로 하던데 냉정하게 말하면 ‘생존추구형 공생관계’다.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에 반대하는 금융노조를 보면 더 각성해야 하는 쪽이 어딘지 알 수 있다. 코로나19 탓에 단축 영업을 한 것에 익숙해져 더 오래 일하기 싫다는 변명 외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단축을 노사가 합의했기에 정상화도 그래야 한다는 노조 측 논리는 옹색하다. 은행원은 기본급의 300~400%를 성과급으로 받으면서 고객인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는 건 ‘금폭(金暴)’이다.
‘풍요로워지려면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거품경제로 인해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잘 살게 됐다’로 인식하는 이가 많아졌다는 일본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의 자국에 대한 경제사적 진단을 우리 금융노조에 적용해야 하는 현실이 아프다.
금융그룹 회장 선임을 둘러싼 반복적 소음도 오직 관치 때문인지 짚어야 한다. 뽑아야 하는 철만 되면 경력이 된다 하는 이들은 정치권 선거캠프를 흉내 내며 백방으로 뛴다. 여의도로, 언론사로 줄대기하는 인사를 여럿 봤다. 이들은 장외에서 관료 출신 후보자 동향 파악에 열을 올렸고, 관치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하게 읊었다. 물론 노골적인 관의 개입으로 연임을 포기한 인사도 있으니 정부는 무죄라고 할 순 없다. 요점은 금융을 산업답게 이끌 인물이 되고자 하는 후보가 정치인처럼 움직이는 현실이 엄연한데 관치만 악이라고 하는 건 단선적이라는 얘기다.
‘선 넘는’ 관치를 놔두자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스튜어드십(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경영관여)을 거론하며 금융그룹 등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의지를 밝힌 게 어떻게 구체화할지 주목한다. 현 정부도 주인 없는 회사인 금융그룹의 지배구조를 탓하면서 궂은 정책이행 행동대장 격으로 금융그룹 회장을 앞세운다. 자유시장경제를 부르짖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언제까지 관이 이끌고 민(民)이 밀어주는 구조여야 금융산업과 국가경제에 글로리(영광)가 있을 건가.
노구치 유키오는 일본 경제가 동력을 상실한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관료들이 큰 그림을 그린 국가주도형 ‘1940년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걸 꼽았다. 한국의 기업인·금융인·관료, 어느 누구도 우리의 미래는 아닐 거라고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금융회사 골드만삭스가 시련의 계절을 보낸다. 지난해 순이익이 48% 급감했다. 3200명을 해고했다. JP모건·모건스탠리 등 경쟁사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골드만삭스의 CEO가 야심 차게 추진한 소비자금융 서비스 확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다. ‘대마불사’이든 아니든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 끝 좌절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불필요한 관치 파열음 속에 갇힌 우리 금융을 보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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