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가 대통령실 인근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범한 사실을 군 당국이 한참 뒤늦게 인정하면서 안보태세에 또다시 허점이 드러났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는데 부실 대응에 더해 사후 정찰 분석까지 무능을 드러내면서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P-73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반경 3.7㎞ 구역이다. 용산뿐 아니라 서초·동작·중구 일부 지역도 포함된다. 북 무인기가 서울 북쪽(은평구) 끝 일부를 스치듯 비행했을 뿐이라던 애초 군 발표보다 깊숙이 침투해 서울 심장부까지 휘젓고 간 것이다. 군은 당시 P-73 안에 탐지됐다가 소실되기를 반복하는 정체불명의 항적을 발견하긴 했으나 이를 새떼나 풍선 같은 물체일 것으로 봤다. 야당과 언론의 P-73 진입 가능성 제기에 공개반박하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랬던 군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하루 전인 지난 3일에야 “정밀 분석해보니 P-73 침범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사건 발생 이후 8일이 지난 뒤였다. 결론적으로 군 전체가 일개 야당 의원(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보다 못한 정보분석력을 인정한 꼴이다.
이만한 일을 파악하는 데에 8일이 걸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이 정도로 정보분석력이 떨어진다면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P-73 침투에 따른 파장을 모면하고자 국민을 속인 셈이 된다. 그런데도 여당은 야당의 첩보 입수 경위를 따지며 본질을 흐리려 하고 있다. 3성 장군 출신으로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민주당 김 의원을 겨냥해 “우리 군 전문가들이 다수의 첨단 레이더와 감시장비를 종합해 알아낸 항적을 김 의원은 간단한 분석으로 알아냈다는 주장은 황당한 궤변일 뿐”이라며 “국민이 납득할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 김 의원이 북한과 내통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공세를 폈다. 군의 무능과 거짓말 논란을 야당의 북한 내통설로 덮으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날린 무인기는 원시적 수준으로 구글 이상의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란 군 당국의 해명은 사실에 가깝다. 2m 안팎의 무인기를 탐지·요격하기는 미국도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별거 아니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전 정부 5년간 남북 평화무드 속에 군은 이 같은 안이함에 익숙해졌다. 편안한 익숙함이 오늘날 총체적 난국의 불씨가 된 것이다. 군 지휘부와 시스템 개편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