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사실상의 금리인상에 나섰다. 20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기 국채금리의 변동 폭을 기존 ±0.25%에서 ±0.50%로 확대키로 한 것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등 주요국의 채권시장은 요동쳤다. ‘구로다(일본은행 총재) 쇼크’라고 부르지만 의미는 ‘아베노믹스의 종언’이다.
애초 시장의 예상은 기존 정책의 고수였다. 적어도 일본의 금융정책 변화는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는 내년 4월 이후에 나올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었다. 구로다 총재도 “아직 경기가 부양되지 않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왔다. 실제로 일본은 전 세계적인 고물가 억제용 금리인상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워낙 국채가 많아 국가 부담이 커지는 데다 물가상승률도 2%대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딜 만했다.
그러나 환율이 그걸 놔두지 않았다. 우선 돈이 금리 차를 찾아 해외로 마구 빠져 나갔다. 3분기에 나간 돈만 거의 20조억엔(200조원)이다. 거의 자본도피 수준이다. 젊은이들은 일본 증시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미국 주식을 샀다. 당연히 환율은 치솟았고 한때 달러당 140엔까지 갔다. 오죽하면 일본은행이 하루 걸러 반대매매에 나서야 했을 정도다. 그래도 엔저는 멈추지 않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일본의 명목 GDP를 3조9000억 달러로 30년 만에 처음 4조달러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심각한 엔저는 물가도 자극했다. 수입물가가 오르니 당연한 결과다. 10월의 소비자물가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3.6%까지 올랐다. 저물가의 상징이던 100엔숍이 사라지고 300엔숍으로 대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이 금리인상에 시동을 건 이유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고 거기서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오늘날 일본의 불행은 재정악화에서 비롯됐다. 30년 전 무소속과 사회민주당이 시작한 복지포퓰리즘으로 일본의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1992년 73.7%였던 국가부채 비율이 지금은 260%를 넘고 국채 발행 잔액은 1000조엔을 돌파했다. 악화된 재정이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는데도 오늘날 금리인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 부담은 온통 국민에게 돌아간다.
나 홀로 금융정책은 영원할 수 없다. 내부 사정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물고 물리는 글로벌 경제변수들이 그걸 두고 보지 않는다. 유연한 정책 변화로 대응해야 더 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정책의 발목을 잡는 근본 원인을 통제하는 게 먼저임은 물론이다. 우리 정책당국자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