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홍길용의 화식열전] 실패한 일본의 도전…경기부양 노렸는데 국부유출만
장단기 금리 동시 통제에도
국내 투자매력은 더 낮아져
해외투자만 늘어 부양효과↓

긴축시 엔화자산 매력 커져
글로벌 자산가격 하락 압력
韓증시 원화강세 수혜 볼수

일본의 긴축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일본중앙은행(BOJ)의 장기금리 목표 상향 발표 이후 주요국 장기채권 가격은 일제히 하락(금리 상승)했다. 우리나라에는 원화 강세를 유발해 한국은행의 긴축 부담을 낮춰준다는 점에서 악재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낮은 이자율에 실망해 자국을 떠나 해외로 향했던 일본의 막대한 민간 자금과, 싼 엔화 금리로 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한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자금이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글로벌 자산가격이 하락한다면 최근 해외투자가 늘어난 우리 경제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日 무제한 양적완화 집착 왜=통화정책은 해당 국가의 펀더멘털을 반영한다. BOJ는 2012년 초장기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아베노믹스(Abenomics)’를 표방한 이후 ‘수익률 곡선 통제(Yield Curve Control)’ 정책을 펼쳐왔다. 보통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로 시장을 조절한다. 이에 더해 장기금리(보통 10년 만기 국채)까지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정책이 YCC다. 정부가 발행하는 지표 채권을 중앙은행이 매입해 수익률을 낮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정부의 국채 이자부담을 낮춰 경기부양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일종의 무제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다.

20일 BOJ는 기준금리는 손대지 않고 10년 만기 국채의 12개월 수익률 목표를 0.25%에서 0.5%로 높였다. 연 이자가 0.25%에서 0.5%로 오르면 아무래도 채권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민간 자금이 채권으로 쏠리면 그만큼 시중에 돈이 덜 풀리면 경기에는 부담이 된다. 정부도 채권 발행 비용이 높아져 재정지출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낮은 이자율에 실망해 해외로 나갔던 자금들도 보유했던 자산을 팔아 국내로 유턴할 수 있다. 일본이 투자했던 주요 글로벌 자산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엔화 수요가 늘면 달러 가치는 하락할 수 있다.

▶초저금리로 경기부양? 해외투자만 늘어=BOJ는 이번 조치가 긴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규모도 더 늘리기로 했다. 민간 자금이 채권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면 시장은 긴축의 신호로 이해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며 YCC 대상인 10년 만기 채권 이외의 채권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금리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BOJ가 경기부양을 위해 고집스럽게 초 저금리를 유지해왔지만 효과 보다는 부작용이 더 컸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3.6% 오르며 40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온 나라가 해외투자에만 열중하니 수출이라고 나아질 리 없다. 일본은 지난 11월까지 16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 중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국내 투자에 쓰라고 푼 돈이 해외 자산을 사는 데만 쓰인 점이다. 2021년말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2023조엔인데 54%(1092조엔)가 예금과 현금이다. 주식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일본 재무성과 일본은행 등의 통계를 보면 일본의 대외투자 자산은 2021년 말 1249조9000억엔(약 1경1875조원)이다. 대외부채를 뺀 대외순자산은 411조2000억엔(약 3900조원)으로 31년 연속 세계 최대 수준을 유지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과 국내에서 해외로 나간 지출의 차이를 집계한 제1차소득수지 흑자는 지난해 26조6000억엔(약 252조원)으로 집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의 대외소득수지 흑자액 규모는 2020년과 2021년 연속 세계 최대 규모이다.

▶큰 손 떠날라…글로벌 자산시장 초긴장=BOJ의 통화정책 전환은 글로벌 자산시장에는 엄청난 악재가 될 수 있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은행, 연기금 등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 채권에 투자한 자금을 3조 달러(한화 약 3870조원)를 넘는 규모로 추산했다. 일본의 미국 주식, 채권 보유량만 현재 1조5000억달러(약 1940조원) 이상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3%에 해당한다. 일본이 네덜란드 주식, 채권에 투자한 금액은 GDP의 9.5%에 달한다. 호주(GDP 대비 8.3%), 프랑스(7.5%), 영국(4.6%), 벨기에(4.5%), 캐나다(4.1%) 투자된 일본 자금도 엄청나다.

20일 BOJ의 조치는 통화정책의 대전환을 시사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 수익률의 새 목표치인 0.5%는 2014년 이전 수준이다. 8년 전보다 글로벌 금리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칠 영향이 당장에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BOJ의 목표치 향후 1.0%까지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엔화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일본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달러약세 유발하면 원화강세…한국 시장에 긍정 효과도= 영향 중요한 것은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다. 가장 큰 변화는 환율이다. 일본의 긴축하면 엔화가 강해지고 달러가 약해진다. 수입물가 부담을 낮춰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설 명분이 약화된다. 원화 강세가 진행되면 외국인에게는 원화 자산으로 환차익을 거둘 기회다. 우리 제품과 경쟁하는 일본 수출품의 글로벌 가격경쟁력도 약해지게 된다. 물론 부정적 영향도 있다. 일본이 해외자산을 매각하며 한국 투자 비중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일본 자금이 이탈하면 우리가 투자한 해외자산 가격도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시장은 日긴축 전환에 무게…4월 변곡점 될수=외신 등을 보면 매크로 헤지펀드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상당수가 일본 국채가격 하락에 돈을 걸었다고 한다. BOJ의 집착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올해 일본 장기국채 수익률 추이를 보면 YCC 주요 대상인 10년물은 관리 범위 아래에 머물렀지만 30년물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7년물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10년물과 차이가 올 하반기에는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앙은행의 인위적 개입이 지나쳐 시장이 왜곡되기 시작한 모습이다. 국부 유출과 물가만 높이는 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첫 변곡점은 10년째 일본 중앙은행을 이끌며 초 저금리를 유지해 온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의 퇴임 이후인 4월이다. 그 때까지 일본 국채시장의 왜곡이 바로잡히지 않고 물가 상승세도 꺾이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긴축이 이뤄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번 BOJ의 조치가 후임 총재의 부담을 낮춰주기 위한 몸풀기 성격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 사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강도도 변수다. 미국이 긴축 강도를 높인다면 일본도 그에 대응할 필요가 커진다.

kyhong@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