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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너무 늦은 때란 결코 없다”

올해도 저물고 있다. 대부분이 돌아보며 후회한다. 더 노력할 걸, 더 즐길 걸, 덜 욕심낼 걸.... 뒤늦은 후회. 관용적인 한국 속담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뒤늦게 허둥댄다는 뜻이다. 무게중심이 과거 일에 대한 낙담과 비난에 있다.

똑같은 문구의 중국 속담이 있다. ‘망양보뢰(亡羊補牢)’. 양을 잃은 후에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의미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양을 잃었지만 지금이라도 고치면 늦은 게 아니다’는 뜻이다. 향후 대비와 격려에 방점이 찍힌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여성이 있다. 쿠바계 미국인 앙헬라 알바레스다. 그녀는 올해 라틴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신인상을 받은 게 왜 화제인가. 그녀의 나이는 무려 95세. 역대 최고령 신인상 수상자다. 예상했겠지만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다. 아버지 반대로 가수 데뷔 포기, 결혼 후 쿠바 혁명을 피해 남편 및 4남매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남편 및 딸의 암으로 사별. 역시 예상했겠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90세 때 첫 콘서트, 94세 때 첫 앨범 발매 그리고 올해 최우수 신인상 수상.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늦은 때란 결코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7개월여가 지났다. 과문한 탓인지 대통령실 용산 이전 말고 딱히 떠오르는 업적이 없다. 물론 이제 7개월이니 좀더 지켜봐야 할 수도 있고, 거대 야당이 손뼉을 맞춰주지 않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운영의 주도권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세력에 있다. 국가비전 체계를 세우고, 주요 과제의 큰 그림과 로드맵을 짜고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와 이를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과연 지난 7개월여 동안 있었는가. ‘거대 야당’은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이미 상수(常數)였는데 지금까지 이 핑계를 대는 게 맞는 일인가.

그래서 제안해본다. 이제라도 국가비전과 시대정신을 담은 정부 명칭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김영삼(문민정부)·김대중(국민의정부)·노무현(참여정부) 대통령은 지향점을 정부 명칭에 담았다. 이후부터는 대통령 이름이 대신했다. 어느 것이 더 목표지향적이고 소비자(국민)친화적 마인드일까.

정치의 개헌, 사회의 교육·노동·연금개혁, 경제의 세제·규제혁신 등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역대 정부들이 모두 집권 초기에 내가 해보겠다며 나섰다가 슬그머니 꽁지를 뺐다. 내 손에 피 묻히는 일이고, 선거판을 어떻게 바꿀지 모를 민감한 일이어서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치권에 진 빚이 없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민감한 정책과제들도 여야를 넘나들며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었다면 오역일까. 그나마 최근 윤 대통령이 사회 부문 3대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건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 능력만 본다며 뽑은 사람들이 온통 검찰과 기획재정부 라인이다. 탕탕평평(蕩蕩平平)하지 않으니 말들이 많다. 이들이 ‘윤핵관’들에게조차 ‘인(人)의 장막’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초심으로 돌아가 이제라도 제대로 된 발걸음을 뗐으면 한다. 양을 잃었지만(낮은 지지율)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치면 된다. “너무 늦은 때란 결코 없다.”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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