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올해 7월 발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미래연)가 5개월간의 논의 끝에 노동시장 개혁과제를 도출해 정부에 최종 권고안을 제시했다. 주 52시간제 연장근로 기준을 현재 1주에서 1개월, 분기, 반기, 1년으로 늘려 최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권고했다. 또 해가 바뀌면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중심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꾸고 근로자 파견 허용 업종과 기간을 늘리는 게 골자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는 산업별·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경직적 운영으로 지금까지 만만찮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최근 불거진 30인 이하 사업장 주 8시간 추가 연장근로제(주 52시간+8시간) 연내 종료 논란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내년부터 당장 이 제도가 폐지되면 심각한 인력난에 빠져 사업을 접어야 할 형편이라고 하소연한다. 근로자들은 특근수당이 확 줄어 투잡을 뛰어야 할 판이라고 반발한다. 미래연의 최대 주 69시간 탄력근무제는 그래서 설득력이 크다. 예컨대 아이스크림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경우 노사가 협의할 경우 성수기엔 여름에 많이 일하고, 비수기인 겨울에 적게 일하는 게 가능하다. 미래연은 또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주 52시간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Exemption)’ 적용을 검토하라고 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부합하는 방향이다. 구글과 애플이 주 52시간제를 따랐다면 오늘과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은 없었을 것이다.
나이, 연차가 아니라 성과에 근거한 공정한 보상을 하는 임금 체계 개편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격감을 돌파하는 대안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속적인 경제동력을 확보하려면 계속고용, 즉 정년연장이 필요한데 현행 연공서열 체계라면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 일본에 정년 65세를 넘긴 은퇴자들이 70세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업무와 숙련도에 따라 조정된 임금을 받아들이는 기업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말처럼 ‘개혁은 내 살갗을 벗겨내야 하는 과정’이다. 보수 정부마다 노동유연성을 외쳤지만 이해당사자와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미래연은 파업 땐 대체근로 허용 등도 제안했지만 민주노총은 “노조의 역할과 위상을 폄훼하는 개악 권고문”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주 52시간제의 산파인 더불어민주당이 지키고 있는 국회 문턱을 넘기도 어렵다. 사회적 공감 형성이 개혁의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이 납득해야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