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휴일인 11일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가결됐다. 여당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과 정의당 등 의원 18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역대 여덟 번째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통과이자 윤석열 정부 들어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은 두 번째 해임건의안 통과다.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대선 불복이자 이재명 대표 수사에 쏠린 관심을 돌리기 위한 책략”이라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전원이 사퇴했다. 대통령실은 “입장이 없다”고 했지만 앞서 진상규명 후 문책 입장을 거듭 밝혀온 만큼 해임안 거부에 무게가 실린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건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국정조사를 거쳐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 거취를 둘러싸고 정국이 다시 얼어붙으면서 이미 정기국회 내 예산안 통과가 불발된 국회 새해 예산안 처리와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한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여당은 이번 일을 야당의 폭거로 규정하기 전에 빌미를 준 대목이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158명이 숨진 참사에 재난·안전 주무장관이 40일이 넘도록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례는 역대 정부에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국민 상당수가 법적 책임 이전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사자 격인 유족협의체가 이 장관 파면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윤핵관’ 권성동 의원은 유족의 문제제기에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2차 가해성 막말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선(先)국정조사-후(後)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야당이 이제 와서 국정조사의 핵심 증인인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처리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리도 찾기 어렵다. 해임건의안은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고, 탄핵소추안은 요건상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안 될 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해임건의 대치 국면이 예산안 처리로 확전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15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재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 또는 수정안을 표결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러다가 초유의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나 2023 회계연도 개시일(1월 1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못하고 ‘준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내년에는 고금리 후폭풍으로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예산안 처리가 민생과 경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