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0%를 기록했다. 지난 7월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인 6.3%까지 오른 뒤 8월 5.7%, 9월 5.6%로 낮아졌다가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10월 5.7%로 오름폭을 확대한 흐름과 견주면 선방한 것이다. 그동안 고물가를 견인했던 공급 측 요인, 즉 우크라이나전쟁, 글로벌 공급망 불안,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누그러진 게 영향을 미쳤다. 7~8%를 넘나들던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도 10월엔 전년 동월보다 6.0% 올라 한·미가 물가 둔화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공급 측 사정이 나아진 것을 반영한다.
지난 10월을 제외하면 7월을 정점으로 물가 상승세가 꺾이는 양상이지만 지난 5월(5.4%) 이후 7개월째 5%가 넘는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 정점이 지났다고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특히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 상승률은 전월과 같은 4.8%로, 2009년 2월(5.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또 다른 근원물가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4.3% 올라 2008년 12월(4.5%) 이후 가장 높았다. 개인서비스 상승률도 6.2%로 여전히 높고, 이 중 외식은 8.6%나 올랐다. 개인서비스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특성 때문에 장기간 물가 하락을 막는 지표로 평가된다.
최근 국내외 기관들의 물가 전망은 대체로 ‘정점 구간을 지나더라도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수렴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상승률 전망치를 애초 5.2%(8월 전망)에서 5.1%로, 내년 상승률 전망치를 3.7%에서 3.6%로 소폭 내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9%로 제시하면서 “서비스물가의 오름세와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발 물가 상승 압력으로 내년에도 고물가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5%대 고물가가 지속될 것이란 얘기나 다름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입물가에 부담을 줬던 강(强)달러 현상이 완화돼 물가를 잡기 위한 국내 금리 인상에 다소 여유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2월부터 금리 인상 속도를 늦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자 1일 원/달러 환율이 4개월 만에 1200원대로 떨어졌다. 그동안 고물가가 고금리·고환율을 더욱 부추겨 경기침체를 불러온다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한국 경제에 엄습하고 있었는데 대응할 시간을 조금 더 번 것이다. 파월의 발언은 그만큼 경기침체 우려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플레부터 잡아야 경기 경착륙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