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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바로보기] 일본을 보는 두개의 눈

지난달 하순 일본에서 두 주를 보냈다. 관광비자와 코로나19 입국 규제가 없어져 자유롭게 전국을 다녔다. 중부 오지 ‘일본 알프스’에서 걷기여행을 두 차례 안내했고,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둘러봤다. 디지털 전환기에다 저성장과 물가급등으로 지친 일본인들을 여기저기서 목격했다.

이번 여행에 참가한 경제·경영학자들이 현장에서 본 일본 평가가 매우 흥미로웠다. 두 ‘일본통’ 전문가는 JR나고야역의 대형 서점 ‘산세이도’를 일주일 간격으로 찾았다. 1970년대 일본 유학을 시작으로 대학과 공직에서 일한 70대 L씨는 “4년 만에 서점을 살펴본 결과, 사고 싶은 책들이 넘쳐났던 전성기의 출판대국 일본이 아니었다”며 “눈길 가는 경제 신간이 적고, 그나마도 수준이 떨어져 일본의 쇠퇴가 실감났다”고 진단했다.

60대 후반 유명 경영학자 Y씨는 조금 후한 점수를 줬다. 미국에서 유학한 뒤 한국, 미국, 일본 기업을 오래 연구해온 그는 서점에서 일본의 저력을 새삼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열심히 책을 보는 일본인들의 학습 열기가 여전히 뜨거웠다”며 “기업과 기업인 등 경영과 역사서적이 많아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요즘 국내외 전문가 사이에도 일본의 미래를 놓고 다소 상반된 전망이 나온다. 엔화 약세와 낙후된 디지털경쟁력을 근거로 일본의 지속적인 쇠락을 예상하는 경제학자들이 꽤 있다. 엔화 가치는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32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여행팀과 다테야마를 오르던 지난달 21일 엔화는 달러당 151엔대까지 급락했다. 일본 당국의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하루 동안 144엔까지 출렁거렸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의 추락은 허약해진 일본 경제의 실체를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경기회복을 위해 금융 완화를 고집하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일시적인 엔화 약세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엔화 하락폭이 경쟁국보다 크지 않은 것은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이 아직은 탄탄하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근로자들의 낮은 ‘임금’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 대기업의 임금이 3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저임금은 일본 기업의 대외 평판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경쟁국보다 낮은 임금은 고용을 더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장기 침체 속에도 일본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내년 봄 대학 문을 나서는 전국의 졸업예정자들은 거의 100% 취업이 내정됐다.

일본 국내에선 느린 디지털 전환은 고령자가 많은 인구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들은 변화 속도가 느려도 약자와 고령자를 끌어안고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선호하는 듯하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일본 풍토에 호감을 갖는 외국인도 많다.

신자유주의적 효율과 경쟁 관점에선 일본은 약점이 훨씬 많은 사회구조다. 그들의 단점은 물론 강점을 함께 봐야 일본의 실체가 보인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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