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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경찰이 ‘위험’ 신고 묵살...작동 멈춘 국가안전시스템

이태원 참사 발생 직전 안전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를 경찰이 사실상 묵살한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사고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신고가 들어왔고, 사람들이 11차례나 급박한 상황을 알렸지만 경찰은 ‘일반적인 불편 신고’쯤으로 여기고 제대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치안의 최일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그 기본 임무다. 그런 경찰이 위험 신고를 묵살했다는 것은 국가의 안전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참사는 인재(人災)이고 국가 책임이라는 사실은 이제 더욱 명백해졌다.

경찰이 직접 공개한 신고 내용을 보면 충격을 넘어 신변안전에 불안감마저 느끼게 한다. “압사당할 것 같다”며 “경찰이 통제해 달라”는 첫 신고 이후 상황의 위급성이 112를 통해 속속 제보됐다. 심지어 “대형 사고가 날 것 같다”거나 사고 직전인 오후 10시11분에는 신고자의 비명까지 들렸다고 한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4차례 출동을 했다고 하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조금만 더 사명감을 가지고 대처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고 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 오판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사고 사흘 만인 1일 “112 신고 현장대응이 미흡했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제 살을 깎는 ‘읍참마속’의 각오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도 했다. 만시지탄이나 강도 높은 감찰과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은 필요하다. 그리고 윤 청장 본인을 포함해 신고를 묵살한 지휘 계통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함은 물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망가진 국가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손을 보는 일이다. 당장 요구되는 것은 일선 경찰의 사명감 제고다. 112 신고 묵살을 통해 드러났듯이 경찰의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국민 안전에 관한 판단은 ‘심하다’는 말을 나올 정도로 공격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시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경찰이 돼 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찰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과감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범인 잡다가 다치게 했다고 징계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참사는 그 요인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만큼 경찰만 탓할 일은 아니다. 국민의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광역단체·중앙정부 그 누구도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통감하고 국가 안전 시스템 회복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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