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월세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월세거래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건을 돌파했고 월세 계약 건수가 전세계약을 앞지르기 시작해 점차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전세가 주도해온 주택 임대차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임대차신고제 시행으로 그간 미신고 경향이 높던 연립·다세대 등의 월세거래 신고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대출금리 상승 여파로 아파트시장에서도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월세가 대세인 시대는 맞는 듯싶다.
집주인에게 목돈을 맡기고 거주하다가 퇴거할 때 그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 전세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성행하는 독특한 주거형태다. 그간 다달이 나가는 돈을 아껴 내 집 마련의 종잣돈을 모으는 주거사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지만 개인 간 이뤄지는 일종의 사금융제도인 전세가 과연 언제까지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인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했던 게 사실이다.
임대차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신고제) 도입을 두고 진통을 겪었던 2020년 여름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일제히 내놨다.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강화 조치와 맞물려 전세 대신 월세를 내놓는 집주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신규 전세물건이 줄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셋집은 귀하디 귀한 존재가 됐다. 전세대란 속에서 전셋값은 가파르게 뛰었고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주택시장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집값 상승세는 꺾였고 전셋집 품귀현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전세의 월세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면서 은행에 이자를 갚는 것보다 집주인에게 임대료를 내는 게 이득인 상황이 되고 있어서다.
원인은 달라졌지만 전세의 월세화 속도는 분명 빨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선호에 따라 시장구조는 언제나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전세의 월세 전환 흐름이 두드러졌지만 다시금 전세거래가 활발해진 바 있다.
임대차시장의 복잡다단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우리네 임대차시장에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세수익이 반가운 집주인이 있고 세입자가 낸 보증금의 힘을 빌려 집을 마련한 탓에 전세가 절실한 집주인도 있다. 목돈을 구하기 버거운 세입자가 있는 한편 매월 빠져나가는 임대료가 부담스러운 세입자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전세에서 월세로 내몰리는 세입자가 있고 수년째 변동이 없었던 월세가격이 급등하면서 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가 꺾였다고는 하지만 전셋값 자체가 올라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이에게는 여전히 부담이다. 우려했던 전세대란은 없었지만 서민의 ‘주거난’이 사라진 건 아니다. 월세시대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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