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해 감사원장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이 특정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요구할 수 있다”고 답했다. 형식논리로만 본다면 가능한 답변이다. 감사원법 등에는 국무총리와 국회, 국민이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하거나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야당 의원의 질문은 감사원의 실세로 불리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와 관련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과 부적절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을 질타한 뒤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감사원이 대통령실의 ‘하명 감사’를 실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감사원의 수장이 대통령도 특정 감사 요구가 가능하다고 답변하는 모습은 정권의 입맛에 맞춘 편향 감사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키울 뿐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기관이지만 정부 부처와 달리 직무에 관해서는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헌법과 감사원법에 명시돼 있다. 대통령의 감사 요구가 인정된다면 거센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최 감사원장은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당연하고 한가한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특정 감사 요구는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 원칙에 맞지않는다는 결기를 보여줘야 했다. 최 원장은 지난 7월에도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말해 여당 내에서 조차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 의원인 감도읍 법사위원장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감사를 요구하더라도 착수 여부는 감사원 스스로 판단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게 최 원장의 항변이지만 권력의 생리상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많지 않다. 그러니 애초에 오해를 살 만한 언행을 삼가는 것이 최선이다.
앞서 감사원의 유 사무총장은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과 여러 차례 문자를 주고받으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경과를 설명해온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감사 대상 선정과 관련한 언론의 합리적 비판을 ‘무식한 소리’라며 거친 언사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추상같은 중립성’을 사수해야 할 감사원 핵심 인사들이 이처럼 신중치 못한 언행을 자꾸 되풀이하니 야당이 ‘정치 탄압’ ‘표적감사’ 의혹을 제기하며 공수처 고발 등 강수를 두는 구실로 삼는 것이다.
정권이 교체된 뒤라 감사원의 책무가 막중하다. 탈원전·신재생 에너지, 코로나19 백신 수급 등 전 정부의 역점 사업에 권력형 비리가 없었는지를 밝혀 후대 정부가 경각심을 갖도록 하려면 공명정대해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국민이 냉소를 보내게 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