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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공무원 침묵·피켓시위로 시작한 서울시 국감

서울시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12일 아침 서울시청 로비에는 ‘중복 감사’ ‘과다한 자료 제출 요구’ 등을 비판하는 공무원노조의 출근길 현수막시위가 열렸다. 1년에만 국회, 서울시의회, 또 정부 감사 및 시 자체 감사 등을 중복으로 받으며 수백, 수천쪽의 자료를 내고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고달픔이 그대로 드러난 시위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40여년 가까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 역사는 서구 국가들과 비교해 결코 긴 것은 아니다. 건국부터 각기 다른 수십개의 주가 모여 중앙정부를 만든 미국이나, 현대국가 형성 이전 지역별 왕국이 득세했던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 지방자치제도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예로부터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 국가를 형성했던 역사도 이들과 다르다. 지방자치제도 시행이 반세기에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현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앙권력의 민주화 이후 정부 주도로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정작 지방자치제도의 기반인 지역민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1987년 이후 8차례 넘게 지자체 동시 선거를 치렀지만 시장이나 도지사 정도를 뺀 나머지 선거에서는 누가 출마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투표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서울시도, 경기도도, 제주도도 결국 여의도 중앙정치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정치 권력의 근간인 재정 면에서도 우리 지방자치제도는 취약하다.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교부금이 지자체 전체 재정의 과반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지방정부만의 특색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일선 지자체장들의 지적이다. 한 해 예산이 조 단위이고 또 자체적으로 거둬들이는 세수도 수천억원인 서울의 잘나가는 자치구 단체장조차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과 중앙정부 및 서울시 매칭 예산을 빼면 실제 고유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수백억원에 불과하다는 하소연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그러다 보니 이날 서울시 국감도 중앙정치 대결의 축소판 그 자체였다. 올해 대통령, 지난해 서울시장 자리를 되찾은 집권여당은 전 정부와 전 서울시장 시절 문제를 파헤치고 부각시키는 데 여념 없었고, 반대로 권력을 내준 야당은 현 시장의 실정 찾기에만 몰두했다. 당장 서울시민에게 필요한 택시 및 대중교통정책 제언이나 환경·안전 문제에 대한 고민은 서울시 국정감사에서조차 먼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지방선거 때가 되면 여야 모두 지방분권 확립을 외친다. 지자체에 권한을 더욱 확대하고 재정 기반 마련을 위해 세제도 고치자고 한다. 심지어 지방의회 정원 수 확대를 주장하거나 시도 광역자치단체 대신 더 많은 숫자의 자치시를 도입하자는 급진적인 의견도 흘러넘친다. 진짜 지방자치제도 확대를 원하는 정치인이라면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5년치, 10년치 뻔한 중복 자료를 요구하고, 자극적인 보도자료를 만드는 대신 각 지자체의 고민을 듣고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하는 국감’에 솔선수범해야 할 때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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