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저로 추락한 ‘파운드화 쇼크’로 세계 금융시장이 며칠째 요동치고 있다. ‘영국발 금융위기설’까지 나돌 정도다. 기축통화의 ‘킹 달러’ 위세가 등등한 미국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나라가 환율 급등에 몸살을 앓는 중이다.
혼돈의 출발은 지난 23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소비 진작을 이유로 50년 만에 최대 폭의 감세 정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사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경제는 계속 아슬아슬하다. 물가는 40년 만의 최고다. 그런데 재정 공급과 다름없는 엇박자 감세정책이 나오자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파운드화를 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파는 전 세계로 미쳤다. 선진국, 신흥국할 것 없이 각국의 증시가 일제히 하락해 연중 최저치 경신이 속출했고 미 국채를 비롯한 시장실세 금리는 치솟았다. 미 다우지수는 전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져 공식적인 약세장(베어마켓)에 들어섰다. 국내 증시도 여파를 비껴가지 못했다. 코스피는 2200선이 깨졌고 코스닥도 700선이 무너졌다. 환율은 달러당 1420원까지 올라갔다. 발작(텐드럼)까지는 아니어도 불안감은 가중됐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다. 경제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대응 여부에 따라 충격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안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차분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위기는 불안을 먹고산다. 시장 심리가 그 만큼 중요하다.
다행히 IMF 환란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죄다 겪은 이력으로 꽤 내공이 쌓인 우리 금융당국의 대응은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금통위는 “인플레 우려 없다”는 미 연준의 허풍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금리인상의 엑셀을 밟았고 그 덕분에 충격적인 인상폭 없이도 한미 간 금리 역전 시기를 늦출 수 있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예측 가능한 메시지로 시장의 혼란을 줄였다.
28일에도 기재부는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의 환율 급등은 대외적 요인 때문”이라면서 “4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은 2008년 금융위기 때의 2배가 넘고 단기외채 비율도 70%대에서 40%대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물론 “필요하면 준비한 대책을 시행하겠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심리전뿐 아니라 현실적인 사전조치들도 진행 중이다. 금융위는 증시 안정펀드 재가동을 준비하겠다고 밝혔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대출 만기를 최대 3년 연장하고 상환은 최대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채무조정을위한 새출발기금도 가동에 들어갔다.
금융위기에 특효약은 없다. 완충과 연착륙이 최선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대로 적절하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