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어설픈 국정운영이 그 도를 넘은 듯하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참배일정 취소와 영빈관 계획 철회는 이를 여지없이 드러낸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외교와 내치 모두 심각하게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다.
여왕 참배일정 취소는 ‘외교 참사’라는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다. 애초 윤 대통령은 18일 영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터민스터홀을 방문해 참배하고 조문록을 작성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게 이번 조문외교의 주요 일정이다. 특히 정상급의 고인 관 개별 참배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핵심적인 일정이자 외교행사다. 그런데 느닷없이 무산됐으니 영국까지 날아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더 황당한 것은 대통령실 해명이다. 대통령실은 “교통 사정 등으로 18일 오후 늦게 도착한 정상들은 19일 조문록을 작성해 달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길이 막히고 시간이 늦어 참배를 못했다는 것 아닌가. 개인 간 조문에서도 없는 경우다. 런던을 방문한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 정상이 참배일정을 무난하게 소화했다고 하니 아쉬움이 더 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해명은 사전 준비가 허술했다는 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 영국 여왕 장례식은 500명가량의 각국 정상과 세계 왕실 관계자가 참석하는 초대형 행사다. 런던 시내로 통하는 길이 수시로 봉쇄되고 수백만명의 조문인파가 몰린 데 따른 엄청난 혼잡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전에 더 치밀하고 꼼꼼하게 시간계획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양국 간 조율을 통해 출국일정을 앞당겨서라도 예정된 참배를 마쳤어야 했다. 정상적인 국가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외교라인이 가동하고는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외교와 의전의 미숙함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빈관 추진 소동은 대통령실과 정부의 기본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 답변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밝힌 것은 그 압권이다. 영빈관은 국가의 핵심 시설로 꼭 필요하다면 공개 논의를 거쳐 진행하는 것이 정상이다. 총리조차 아무것도 모른 채 몇 몇 참모와 경호실 관계자가 모여 적당히 의논해 추진할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넉 달이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이런 안팎의 난맥상을 안고 그 먼 길을 갈 수는 없다. 국정운영의 성패는 결국 사람 쓰기에 달렸다. 특정 분야 출신과 지인 중심에서 탈피하고 인재 풀을 과감하게 넓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