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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현대차·KT 혈맹 명분과 실리, 숨은 의미들
각사 지분율 5% 미만으로
지주체제 전환 가능성 대비
구현모 후계 정의선 영향력↑
윤경림 양사 걸쳐 역할 클듯

기원전371년 제 위왕(齊威王) 8년. 초(楚)가 제나라에 쳐들어왔다. 위왕은 순우곤(淳于髡)을 조(趙)나라에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기로 한다. 조나라 왕에 줄 선물로 황금 100근, 수레 10승(乘)도 내어준다. 그런데 순우곤은 선뜻 떠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위왕에게 얘기 하나를 들여준다.

“오는 길에 보니 밭 갈던 농사꾼이 제사 지내는 걸 봤습니다. 족발 하나에 술 한 사발을 놔두고 ‘높은 밭에서는 광주리에 가득,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 곡식이 잘 익어 우리 집을 풍성하게 하소서’라고 빌더군요. 웃기지 않습니까. 바치는 예물은 적은데 바라는 바는 그리 많으니까요”

알아 들은 제위왕은 황금 1000일(鎰)과 백옥10쌍, 수레 1000승을 더 준다. 순우곤은 이를 받아 조나라에서 군사 10만명, 전차 1000승을 빌려온다. 초나라 군대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철수했다. 만약 황금 100근과 수레 10승만 보냈다면 초나라를 물리칠 정도의 구원병을 얻을 수 있었을까?

현대차그룹이 KT와 각자가 가진 자기주식을 활용해 지분을 맞교환했다. 네이버와 미래에셋, SK그룹과 하나금융, 두나무와 하이브 등 최근 기업간 상호 지분투자를 통한 제휴 사례는 적지 않다. 이번 맞교환은 앞선 사례들을 뛰어넘는 역대급 규모다. 큰 ‘베팅’인 만큼 서로 얻는 것도 상당하다.

▶모빌리티와 6G·통신의 만남=자율주행차의 핵심은 5G 이상에서 구현 가능한 빠른 응답 속도다. 통신사와 자동차회사의 협업은 필수다.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교통) 사업에서도 통신은 아주 중요하다. 2030년경에 상용화가 예상되는 6G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6G는 지상의 기지국과 위성까지 활용해야 가능한 기술이다. KT는 무궁화 5, 6, 5A, 7호 및 KOREASAT 8 등 총 5개의 위성을 보유한 국내 유일의 위성사업자다.

KT 입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라는 엄청난 고객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미래 가장 유망한 자율주행 부문에서 경쟁사(SK텔레콤, LG유플러스) 대비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섰다. 현대차그룹과 자동차·철강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상당한 규모의 기업과 개인에 대한 KT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

▶‘3각’ 교환…현대차그룹, 지주체제 예고=이번 지분 맞교환 각각 7459억원이다. KT는 자기주식 2517만주 가운데 80%인 2011만주를 내놓는다. 현재 현대모비스 보유 자기주식은 352만주로 시가 7668억원이다. 현대차는 1490만주로 2조8000억원이 넘는다. KT와 현대모비스 또는 KT와 현대차 ‘1대1’로도 지분 맞교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18조에 따라 지주회사는 계열회사가 아닌 국내 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한다. 이번 맞교환으로 KT 지분율은 현대차 4.7%, 현대모비스 3.1%다. 지주회사가 아닌 네이버-미래에셋, 하이브-두나무 제휴에서는 지분율이 5%를 넘었었다. 지주회사인 SK-하나금융 제휴는 지분율 5% 미만으로 이뤄졌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부품제조 부문을 분할하기로 했다. 분할 후에는 사실상 지주회사 형태가 된다. 정의선 회장 중심으로의 지배구조 개편에서 현대모비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차도 그룹이 지주체제가 된다면 지주회사 후보다.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을 합치면 7.45%다. 현대모비스(7.49%)와 비슷하다.

▶구현모? 윤경림?…KT 지배구조 현대차에 달렸다=이번 지분 맞교환은 일종의 ‘담보’ 성격이다. 보유 목적도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투자다. 7459억원이라는 상당한 규모가 필요했을 이유는 뭘까? KT 최대주주는 국민연금(11.23%)이다. 2대 주주는 신한은행(5.58%)이다.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가 될 수는 없지만 원활한 협업을 위해 2대 주주는 될 만하다. 단순투자이지만 재계 2위 그룹이 가진 7.8%의 의결권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구현모 KT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끝난다. 윤경림 KT 사장은 이번 제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윤 사장은 KT 출신이지만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자동차에서 일했다. 지난 해 KT 복귀 이후 그룹전환(transformation) 부문장을 맡고 있다. 구 회장의 연임 가능성과 함께 윤 사장이 차세대 리더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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