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에 짓눌린 한국 경제에 모처럼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약 3조3000억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자력발전소 건설계약을 따냈다는 소식이다. 한국이 조 단위의 해외 원전사업을 계약한 것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약 25조원) 이후 13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으로 40여년간 축적한 원전강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렸는데 이번 해외 수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는 40조원 규모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러시아 원전회사(ASE)가 주계약자이고 우리는 터빈 등 80여 건물구조물을 건설하게 된다. 원전의 핵심인 원자로 수주가 아닌 데다 13년 전 UAE 원전계약에 비해 규모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국 원전의 생태계 부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이번 수출은 중동에 이어 아프리카 원전시장 첫 진출이라는 의미가 있다. UAE 원전의 성공적 운영으로 “사막에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명성을 얻은 덕이다. 엘다바 프로젝트에는 기계·배관·전기·계측 등 국내 100여개 원전 기자재업체가 참여한다. 탈원전에 따라 지난 5년간 일감 절벽에 내몰렸던 중소기업들엔 가뭄 속 단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이 에너지 수급 불안에 시달리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원전의 효능감이 새삼 부각되는 국면이다. 17개국에서 53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 중일 정도로 ‘원전 르네상스’가 다시 세계를 강타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WNA(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한국형 모델의 건설 단가는 미국의 65%이며 러시아, 프랑스와 비교하면 50%대다. 계획된 에산으로 공기를 맞추는 시공 능력도 선진국들을 압도한다. 이런 강점을 십분 활용한다면 이집트와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추가로 건설 예정인 바라카 5, 6호기 그리고 입찰을 앞둔 체코, 폴란드, 영국 등의 수주전에서도 잇단 낭보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원전 수주는 지난해 12월 한수원이 러시아 ASE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 시발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원전강국 회복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의 성과가 아닌 것이다. 새 정부는 2030년 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정부 부처, 공공기관, 민간 단체 등 총 30여개 원전 유관기관으로 구성된 ‘원전 수출전략 추진위’를 지난 18일 발족했다. 소리만 요란한 꽹과리가 되지 않도록 실적으로 증명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