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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뜨거웠던’ 한중 30년...이젠 ‘헤어질 결심’이라도

최근 30년간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사건 3개를 꼽자면 1993년 금융실명제, 97년 외환위기 그리고 92년 한중 수교다. 금융실명제는 거대한 지하경제에 종지부를 찍은 일대 전환점이다. 97년 외환위기는 전쟁이 아닌 경제로도 나라가 망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우리 경제 시스템을 통째로 바꾸게 한 극렬한 자극이었다. 92년 한중 수교는 우리 경제의 효율을 극대화시킨 계기다. 한중 수교는 정치적으로는 냉전 체제 붕괴, 경제적으로는 세계화의 시작점에 있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편입되면서 전 세계는 저물가와 고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통신혁명까지 이뤄지면서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과 광대한 소비시장은 전 세계 기업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에 가장 인접한 산업화 국가인 한국의 수혜가 가장 컸다. 외환위기를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도 중국이다.

미국도 중국 덕을 톡톡히 봤다. 제조업 기반은 신흥국에 내줬지만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역대 최장기간 호황을 누렸다. 달러를 찍어내 금융 시스템을 통해 공급하면 싼값에 중국산 제품을 소비할 수 있었다. 냉전 이후 미국의 단일 패권을 가능하게 한 ‘비대칭 전력’은 바로 달러였다.

30여년의 세계화로 중국은 경제대국이 됐다. 서방에서는 ‘차이나(秦)’로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중화(中華)인민공화국’이다. 아편전쟁 이전만 해도 늘 세계 역사의 한가운데 있던 나라다. 이제 160년 만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 세계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을 도전자로 보기 시작했다. ‘칩(Chip) 4’ ‘IRA(인플레이션감축법안)’ 등은 중국에 대한 일종의 ‘경제적 선전포고’다.

간접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배경에는 미-중 대결이 있다. 중국은 러시아 원유를 구입해주고 공산품을 공급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 중국은 달러화가 독점하는 원자재시장에서 위안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마련하게 됐다. 미국은 중국과 손잡은 러시아에 유럽의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 이번 전쟁은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의 군사기술과 방위산업 경쟁력을 시험할 기회다. 러시아와 무기체계가 비슷한 중국이 숨겨진 가상의 상대일 수도 있다.

러-우의 열전(hot war)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의 냉전(cold war)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가 참전한 진짜 전쟁터는 경제다. 세계화에서 대결로 구도가 바뀐 패러다임에서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고 새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 상품의 주요 시장도 바뀔 수 있다. 당분간 고금리·고비용의 시대다.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부 혁신을 통한 효율 개선이 시급하다.

30년이면 한 세대다. 세상을 이끄는 사람이 바뀔 때다. 사람이 바뀌면 세상의 질서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198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일본은 어찌 보면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된 30년간 가장 상대적 타격이 컸던 나라다. 한중 수교 30년은 새로운 도전이다. 경제가 안보가 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일본처럼 뒤처질 수 있다. 그런데 국내의 주요 관심은 경제가 아니다. 정치인과 권력자들은 ‘내부 총질’에만 몰두하는 듯하다. 앞으로 30년이 걱정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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