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천정부지다. 상승 기세가 공포스러울 정도다. 이미 역대급이다. 개방형 무역국가인 우리에게 환율은 가장 중요한 경제지표다. 한국 경제의 건강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수출과 수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다 물가에도 직결된다. 환율 안정 없이는 경제안정이 불가능하다. 전쟁과 다름없이 환율관리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올 들어 환율 상승세엔 브레이크가 없는 듯 보인다. 연초만 해도 달러당 1150원에서 20~30원가량을 오르내렸다. 그것도 6개월 전에 비해선 거의 100원이 오른 수준이다. 그런데 지난 7월 이후 원/달러 환율은 계속 1300원대다. 23일엔 장중 1350원도 위협받았다. 13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미 공포는 현실이 된 것이다.
1300원대의 환율은 한국 경제의 트라우마다. 그때마다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1년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엄청난 고비를 맞았다. 공포의 대명사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주요국들은 환율관리에 생사를 건다. 환율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동안의 목표는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이었다. 그래야 수출 가격 경쟁력이 커진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글로벌 경제의 화두였던 과거 얘기다.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통화 가치 상승에 목을 맨다. 역(逆)환율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다. 인플레 때문이다. 펀더멘털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상황이 못 된다. 환율이 높아지면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난다.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 적자는 254억7000만달러다. 역대 최대였던 1996년의 한 해 적자(206억달러)를 이미 넘었다. 연말까지는 적자폭을 가늠하기도 힘들다. 외환보유액도 300억달러 이상 줄었다.
문제는 현재 고환율의 원인이 해외, 특히 미국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계속된 금리 인상과 긴축이 안전자산인 달러를 선호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로선 원인 변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 당국의 역할도 심리적 안정을 위한 구두 개입이나 환율 급변동을 통제할 미세조정을 넘어서기 힘들다. 외환보유액 증가도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결국 본질적인 해결책은 기업들이 웬만한 환율변동은 견딜 만한 대응력을 갖추는 일이다. 노력도 없지 않다. 주요 수출품의 해외 공장 생산 비중이 커졌고 현지 통화 결제 비중도 적지 않아 환율 민감도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헤지를 통해 환위험의 바람막이를 하는 기업도 많다.
환율 파도는 뚫고 나가는 게 아니라 타고 넘어야 한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