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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희의 현장에서] n차 무순위청약에 이중고 겪는 건설사들

“청약 전 반드시 대표전화 문의, 재당첨제한 10년, 서울 거주자·무주택자만 해당.”

결국 대형 건설사도 내걸었다. 한화건설은 오는 16일 ‘포레나 미아’의 네 번째 무순위 청약을 앞두고 주택명에 이른바 ‘묻지마 청약’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을 추가했다. 모집공고문에도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자금 사정 등으로 계약하기 어려운 경우 청약 신청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실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주택명 옆에 ‘재당첨제한 적용’ ‘접수 전 대표전화 문의’ 등의 문구를 내건 단지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 8일 나란히 무순위 청약을 공고한 인천 ‘송도 럭스오션 SK뷰’와 부산 ‘사하 삼정그린코아 더시티’가 그랬고, 지난달 6번째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경기 ‘의정부역 월드메르디앙 스마트시티’는 단지명을 ‘의정부 월드메르디앙’으로 줄이면서까지 청약 자제 문구를 추가했다. 남은 아파트를 적극적으로 팔아야 하는 업체들이 청약 자제를 호소한다는 게 의아할 법도 하지만 유효 경쟁률이 나오면 무순위 청약을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는 ‘무한 루프’에 갇힌 속사정을 알면 절로 수긍이 간다.

현행 주택 공급 규칙상 청약경쟁률이 평균 1대 1을 넘는 아파트는 무순위 청약 방식으로 잔여 가구를 공급해야 한다. 4가구 모집에 5명이 신청하면 경쟁률은 1.25대 1. 4가구가 모두 주인을 찾지 못하는 한 무순위 청약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n차’ 접수단지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거주지와 무주택자 요건만 맞으면 신청할 수 있다. 이에 ‘일단 넣고 보자’는 생각으로 신청하는 이들이 많아 계약 체결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은 편이다. 실제 포레나미아의 경우 3차 무순위 청약에서 74가구 모집에 85명이 신청했는데 70가구가 고스란히 남았고 4차 물량으로 다시 나왔다. 고작 4채만 계약된 셈이다.

몇 차례 무순위 청약을 반복하고 있는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람들이 과거 ‘줍줍’만 생각하고 넣는데 포기자, 부적격자 등 허수가 많아서 계약률은 10%도 채 안 된다”며 “경쟁률이 발생했다고 계속 무순위 청약을 돌리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 않냐”고 토로했다. 한 번의 무순위 청약이 추가로 진행될 때마다 2~3주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만큼 사업이 지연돼 비용도 추가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정부로서도 행정력 낭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도 건설업계의 쏟아지는 민원에 사정은 알고 있는 모양새다. 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제도의 득실을 따져야 하는 만큼 개선방안에 대해선 아직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미계약물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무순위 청약제도의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다만 무의미한 무순위 청약 반복이 자원과 행정의 낭비를 일으키고 있다면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댈 필요도 있다. 청약 대기자도 더는 관심 없는 무순위 입주자모집공고를 보고 싶지 않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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