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계획한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조정 방안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너무 파격적이어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대야 하는 은행들 목소리이긴 하지만 흘려버릴 일도 아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이자를 갚아온 금융소비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금융불안이 가중된 것은 사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7일 지금의 가계부채 불안 수준이 심각하다는 보고서(금융 불안정성, 장기균형선 넘고 있다)를 내놨다. 코로나19 위기의 평균 가계 금융 불균형 정도는 78.5포인트로 장기평균 수준(28.5포인트)을 크게 웃도는 데다 금융위기(75.4포인트)나 외환위기(52.5포인트)보다도 높다는 것이다. 금융 불균형이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을 비롯한 실물경제와 비교할 때 얼마나 과도하게 늘었는지를 의미한다.
실제로 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6월 말 기준 437조원으로, 코로나 대유행 이전인 2019년 6월 말 잔액 325조원에서 100조원 넘게 증가했다. 특히 이들 중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13만1053명에서 38만2235명으로 3배나 늘었다. 지난 4월부터 기준금리가 연속으로 올랐으니 다중채무자와 대출총액 규모는 더 늘어났을 게 분명하다.
상황이 이쯤 되니 부실차주의 양산으로 금융시장이 흔들리기 전에 금융당국은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오는 9월이면 긴급 금융지원도 종료된다. 그 이전에 필요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으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층 대출자의 부실 채권을 사들여 채무를 조정해줄 계획이다. 대상은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 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 지원을 받고 있거나 손실보상금 또는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수령한 개인사업자·소상공인이다.
문제는 채무조정의 내용이다. 기존 대출을 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면서 대출금리를 연 3∼5%로 낮춰주는 한편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 차주’의 원금 가운데 60∼90%를 아예 감면해주기로 했다. 은행권은 너무 과도한 원금감면율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최고 90%까지 탕감해주는 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물론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과거엔 전액 탕감 사례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건 10년이상 1000만원 미만의 연체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일반 채무자에게 50% 이상 탕감해준 일은 없다. 무조건 많이 깎아주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수혜자의 재기 의욕을 되살릴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