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간에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노(勞)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제1의 개혁과제가 노동개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의 운동장이 평평하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연원을 찾기 위해서는 시계를 뒤로 돌려야 한다. 1981년 8월 3일 오전 7시 ‘항공관제사노조(PATCO)’는 연방법이 금한 파업을 선언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TV 연설을 통해 노조에게 ‘48시간 안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최후통첩했다. 그후 미복귀자 1만1345명의 관제사를 해고하고 이들의 재취업을 영구 금지시켰다.
관제사노조가 레이건의 최후통첩을 종이호랑이로 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파업 선언 직전인 1980년 말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관제사노조가 레이건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관행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기에 레이건 당선에 일조한 자신들의 목에 칼을 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항공관제사는 항공운송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며 또한 전문성으로 대체 가능성이 매우 낮은 직종이다. 따라서 관제사노조는 ‘연방항공청’과의 단체교섭에서 늘 유리한 고지를 점해왔다. 관제사노조는 파업을 통해 갓 출발한 레이건 대통령을 길들이고자 했고 레이건은 이를 간파했다. 레이건은 파업에 대비한 나름의 도상(圖上)계획을 갖고 있었다. 파업에 불참한 관제사, 관리자, 군관제사, 퇴역 관제사, 다른 공공기관의 관제사들의 동원 지시이다.
관제사노조가 항복한 결정적 이유는 연방법원이 노조에게 하루 10만달러의 벌금을 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노조의 파업기금 350만달러도 연방법원의 명령으로 동결되었다. 조합원이 해고되고 기금이 동결되고 벌금이 부과되면서 노조는 와해됐다. 1981년 10월 22일 연방노동위원회에 의해 단체교섭권이 취소됐다.
레이건은 법과 원칙대로 처리함으로써 레이건 이전에 관행화되었던 공공부문의 불법파업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하지만 레이건은 반(反)노조주의자가 아니다. 그 자신이 노조출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보자. 대한민국은 ‘반(反)기업 정서, 거미줄 같은 규제, 다락같이 높은 법인세율, 노(勞)에 기울어진 운동장’ 등의 이유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돼버렸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민노총을 혁파해야 한다.
그 대회전이 민노총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윤석열 정부와 민노총 힘 겨루기는 숙명이다. 대회전에서 윤석열 정부는 완패했다. ‘물류를 세워 대한민국을 멈추겠다’는 협박에 굴복한 것이다. ‘안전운임제’ 주장은 허구이다. ‘돈을 더 주면 안전 운전하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안전운전은 IT기술과 운전자교육으로 접근해야 한다. 안전운임일몰제는 화물연대가 동의해서 만들어진 장치이다. 화물연대는 자신들이 합의한 일몰제를 깨면서 파업의 물꼬를 텄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은 51일간 지속됐으며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사무실 제공, 임금 4.5% 인상, 폐업 협력업체 근로자 고용승계 노력 등에 대한 합의로 미봉됐다. 이번 사태는 원청과 하청 간의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서 비롯된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사실이 시설 점거라는 ‘불법 파업’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 손실이 8000억원에 이름에도 파업에 따른 손해 배상은 추후 논의하기로 미루었다. 그렇다면 면책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회자된다. 결국은 리더십이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와 법치를 불러내 현실 정치세계에서 실천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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