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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尹의 광복절 경축사 걱정을 걱정한다

국외로 도주한 뒤 e-메일로 사임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은 ‘철학 없는 아무나가 국정을 맡으면 나라는 망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생필품을 못 구해 성난 시민이 라자팍사 관저를 점거했던 사진은 우울했다. 시민의 눈에서 기쁨이 아닌 지도자 없는 서글픔이 읽혀서다. 라자팍사는 정실주의로 정치를 가내수공업처럼 만들고 감당 못할 국가채무만 부풀린 채 제 살길을 찾아떠났다.

세계 ‘헤지펀드계 대부’로 통하는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는 최근 저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국가의 부상~쇠퇴 사이클엔 반복하는 6단계가 있다며, 그에 맞는 리더도 적었다. 투자를 위해 500년 역사를 공부했고, 세상의 작동 원리를 파악했다니, 허튼소리로 들리진 않았다. 요컨대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덩샤오핑 등의 리더가 정점 직전인 ‘평화와 번영의 시기’(3단계)를 이끌었다고 했다. 비전을 제시했고,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했다는 점에서다. 미국은 현재 내전 상태(6단계) 직전인 5단계로 구분했다. 재정이 악화하고 분열이 심화한 걸 이유로 댔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은 3단계에 해당한다고 달리오는 분석했다. 쉽게 말해 미국은 망하기 직전이고 중국은 부상하는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은 그가 분류 대상으로 삼은 강대국은 아니지만 기준을 적용하면 어디쯤일까. 3단계를 만끽하지 못한 채 등 떠밀려 4단계(과잉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파악된다. 역대 대통령은 나름의 비전을 내놓았고, 국가발전을 도모해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기간이 짧았다. 선진국인 체하며 빈부·가치관의 격차가 늘어나 나라가 갈라졌다. 설상가상 팬데믹이 돌발했고 빚내서 자산을 사는 거품경제, 즉 4단계가 너무 빨리 왔다. 좋아질 게 없는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돈줄을 헐겁게 쥐던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된통 데인 뒤 통화긴축행 급발진을 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 간 금리 역전이 현실화하면 썰물을 탈 외국인 자금을 붙들기 힘들어지고, 급등하는 이자에 흔들릴 경제를 떠받칠 재정 투입도 상시화해야 할 현실 앞에 서 있다. 윤석열식 국가발전 비전은커녕 땜질처방만 내놓아야 할 처지인데 이 정부는 딴판을 벌이고 있다. 일본과 관계 개선 얘기다. 미국 조야에선 한국이 일본과 사이 좋게 지내야 하는 당위를 여러 경로를 통해 노골적으로 퍼뜨린다. 북핵 위협·중국 부상 대응, 공급망 복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약하더라도 전엔 비용을 감당했지만 그 시절은 끝났다는 식이다. 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일본과 소통지점을 늘려왔다.

이대로라면 국제 정세를 앞세워 과거보단 미래를 보자는 식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윤 대통령이 본격 천명할 공산이 크다. 지지율이 급락한 그는 반전카드를 내듯 광복절 경축사에 넣을 실적을 쌓으려고 일본에 공을 들이는 정황이 잡히고 있다.

‘윤석열이 선봉에 선 한국은 이런 국가가 목표다’라는 종합청사진을 밝힌 기억이 없는데 일본과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라고 고집하는 형세일 수 있다. 정 원한다면 왜 일본과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 우리 경제와 삶이 얼마나 좋아질지 공소장을 쓰듯 조밀하게 직접 설명해보라. 미래가 중요하다는 두루뭉술한 얘긴 지겹게 들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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