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 때조차 축구에 관심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인기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은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골때녀에 대한 높은 관심은 필자만의 것이 아니다. 시즌 1 마지막 회차에는 SBS 사장이 직접 등장해 시상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모았고, 시즌 2 초반에는 제작진의 편집 조작이 있었음에도 시청률은 굳건했다.
이런 골때녀의 인기 비결에 대해 많은 사람이 출연진의 성장과 열의가 주는 감동을 이야기한다.
시즌 1에서 ‘꽈당현이’로 불리며 헛발질에 넘어지기 일쑤였던 이현이는 시즌 2에서 득점왕 후보로 올라서는 대성장을 보였다. 송해나, 간미연 등도 “재능이 없다” “민폐다” 같은 초반의 비판 여론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성장이 빛난 출연진이다. 이런 성장은 당연히 멤버 개개인의 축구에 대한 열의가 뒷받침하고 있다. 시즌 1 감독 중 한 명이었던 최용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일부 프로축구 선수의 멘탈이 구척장신만도 못하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이런 열의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미지 변신을 한 이도 많았다. 여성 아나운서팀 ‘아나콘다’의 윤태진은 무득점 연패의 늪을 깨는 첫 골을 넣은 순간 괴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팀원도 소리를 지르며 서로 얼싸안았다. 늘 봐왔던 단정한 아나운서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언제나 귀엽고 애교 많은 행동과 목소리로 사랑받아온 가수 아유미도 굵은 목소리로 팀원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 일쑤다. 같은 팀 ‘탑걸’ 소속인 원조 요정 걸그룹 ‘S.E.S.’ 출신 바다는 “20년간 방송 출연을 하면서 늘 사람들에게 예쁘고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었고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축구를 하는 동안은 완전히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골때녀의 영향으로 풋살 교실을 찾거나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여성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축구의 매력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적극적인 신체활동 경험이 주는 해방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필자의 호신술 수업에서도 그동안 누려볼 수 없었던 ‘적극적으로 힘을 써서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치며 겨루고 이겨 보는’ 기회와 성취감이 너무나 큰 기쁨과 해방감으로 다가왔다는 참가자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특히 10~20대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신체활동 경험의 제약을 받았던 30대 이상 여성들, 특히 결혼, 출산, 육아를 겪었던 이들에게 자기 몸을 다시 찾고 새로이 만들어 가는 경험은 너무나 소중하다.
체육활동에 익숙한 남성으로서는 고작 그 정도로 유난이고 호들갑이냐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톱배우 최여진이 그 하찮은 축구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여성들에게는 신체활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다. 거꾸로 말하면 여성들에게는 이처럼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더 많이 남아 있고, 당사자들 역시 그런 기회를 소중히 즐기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사회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김기태 A.S.A.P. 여성호신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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