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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낯선 고금리 경제, 어떻게 넘을 것인가

외환위기 직후 연 10%를 넘는 은행 예금상품이 수두룩했다. 대출금리는 그보다 더 높으니 돈을 빌려 투자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 목돈을 만들면 집을 살 수 있는 시대였다. 구제금융을 받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고금리를 겪었지만 우리 기업과 경제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계기였다. 기업들은 비용효율화를 위해 해외로 나갔고, 경제성장으로 폭발한 중국발 수요 덕도 톡톡히 봤다.

위기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가 드러나면서 다가온다. 위기극복은 더 나은 효율이 가능한 새 시스템으로의 전환 과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초저금리로 자본의 효율을 높이면서 극복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자본에만 기댄 성장은 역풍을 맞게 된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린 탓이다. 열심히 일해도 내 집 마련 목돈을 모으기 어려워졌다. 노동의 가치가 자본효율을 쫓아가지 못해서다. 집을 사려면 빚을 내야 한다.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영끌’과 코인투자로 돈을 벌려고 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지난 30여년간 이어진 세계화 시대에는 이데올로기보다 효율이 우선시 됐다. 가장 싸게 만들고 많이 팔아 이익 규모를 키우는 구조다. 세계 경제는 물가상승이 최소화되는 가운데 가파른 성장을 이뤘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고, 러시아도 소련 몰락의 충격파에서 정상을 회복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힘의 팽창은 충돌로 이어졌다. 유로존이 동유럽으로 경제권을 팽창하면서 러시아와 충돌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東進)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진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독자 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협력적 경제질서가 대결과 견제의 블록화로 바뀌고 있다.

돈이 많이 풀려 촉발된 인플레이션은 금리를 높이면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효율 저하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은 구조적 고비용으로 이어지지 쉽다.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과 으르렁거리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전 세계에 석유를 공급해온 중동 국가들도 더는 미국의 패권에 따르려 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는 세계 원유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정치적 지렛대로 쓰려는 야심이 상당하다.

원자재 조달이 어려워지고 금리마저 높아지면 생산효율을 높여야 한다. 슘페터는 ‘기술 혁신’을 자본주의를 이끄는 힘으로 봤다. 혁신을 이끄는 주체는 ‘기업가’라고 했다. 결국 인간을 통해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 내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는 제조업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적 기술 혁신을 주도적으로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 기술 혁신을 이끌어낼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노동시장도 유연하지 못하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연공서열, 순환 배치 같은 낡은 인사제도가 기업의 효율을 훼손한다. 성과에 대한 합리적 평가를 바탕으로 한 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이 절실하다.

공급망 위기와 인플레이션 고금리 충격은 하반기엔 실물경제까지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경제는 성공적으로 생존했다. 이번에도 구조개혁을 이뤄내야만 새로운 글로벌 패러다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다시 열심히 일을 하면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돼야 한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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