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가 기로에 서 있다. 코로나19 당시 무차별적 돈풀기에 나섰던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이제 ‘초(超)인플레이션’이라는 값비싼 청구서를 받아들게 됐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오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서는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취약한 나라부터 풍파를 맞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국으로서의 진가를 테스트받는 시점에 있다. 이때 자칫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통화가치의 급격한 하락과 대규모 해외 자본 유출을 겪게 된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 이탈로 큰 폭의 조정을 보이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맞닥뜨리게 됐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가계의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증대되고, 이는 기업의 투자를 늘려 다시 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표방했다. 이는 포스트 케인스학파의 임금 주도성장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민간주도성장(민주성)’를 기치로 내걸었다.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경제환경을 조성해주면 시장은 스스로 최고 효율의 방식을 찾아간다는 고전학파에 뿌리가 있다. 경제 주체들은 이처럼 결이 크게 다른 정책 기조에 새로 적응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새 정부는 출범 후 첫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가업 승계 시 상속세 납부 유예,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 폐지 등 기업들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및 공정거래법 심사 지침 개정 등 최고경영자의 형사처벌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과세 완화나 중대재해처벌법·공정거래법의 궁극적인 문제 보완을 위해서는 국회 내 법 개정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법인세율 인하만 하더라도 이를 담은 세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민주당 의석 수가 많은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질 경우 현 정부 내내 ‘식물국회’ 소리가 나올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38개 회원국 중 정부의 기업활동 개입 수준이 3위를 기록했다. 상품시장 규제 강도도 6위를 나타냈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두 순위 모두 오르면서 기업의 자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문재인 정부(2017~2021년) 당시 우리나라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2.3%를 기록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의 3.0%보다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영향이 컸지만 ‘소주성’의 정책효과 기대만큼 크지 못했다는 점 역시 보여준다.
민주당도 이 같은 ‘소주성’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새 정부의 ‘민주성’ 전환에 열린 자세로 나서야 한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경제 살리는 법안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식으로 투자 의욕을 꺾는 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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