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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서울시 높이 규제에 대한 의문

지난달 졸업 후 처음으로 미국 필라델피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다시 찾은 도시는 30년 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도심 쇠퇴의 정점에 있었던 우중충한 도시가 아니라 도심엔 고층 건물들, 모교 가로변엔 새로운 건물들이 채워져 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활력이 넘치는 장소로 변해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치던 도시의 발전은 강도 높아진 경제활동을 담아내는 새로운 건축물들의 등장으로 귀결되고 사람들에게 인지된다.

30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처음으로 치안 문제로 조심스러웠던 도심을 방문하면서 필라델피아 시청사의 기형적으로 높은 첨탑(167m)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 있어 필라델피아는 건국의 역사가 함께 한 역사도시다. 그런 역사도시의 가장 중심에 입지한 역사적 건물인 시청사의 권위를 지키려는 시도로 신축 건물들은 시청의 첨탑 높이 이상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높이규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후 도시의 성장은 고밀의 고층의 토지 이용을 지속적으로 요구되어 왔고, 100년간 유지되던 높이 규제는 1987년 결국 포기되고 시청사 조망에 대한 제한적인 요구 조건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도심에 요구되는 초고층 건물을 허용하게 되었다.

최근 서울시 한 자문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서울시 구도심, 즉 사대문 안 신축 건물들의 높이 규제였다. 필자가 상당 기간 서울시의 도시계획적 선택에 벗어나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대문 안이라는 넓은 권역에 90m라는 동일한 높이 규제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유일한 참석자였다. 회의에서 돌아와 찾아보니 서울 내부에 있는 내사산(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 중 가장 낮은 낙산 높이인 125m가 해발고도 기준이 되어 광화문 원점의 해발고도인 30m 정도와의 차이인 90m 남짓이 사대문 안 건물의 높이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풍수지리적 관점이 역사적 중요성을 지닐 수도 있겠으나 현대적 도시 중심의 성장을 가로막을 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이 들었다. 그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300m를 넘나드는 나머지 내사산과의 평균이나 인접 내사산이 아닌 가장 낮은 낙산의 높이가 합리적인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합리성보다는 선명성이 강조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지난달 미국 여정은 뉴욕에서 마감되었다. 처형이 맨해튼 건너편 뉴저지주 포트리 고층 아파트에 사는 관계로 며칠 동안 맨해튼의 스카이라인도 즐기며 페리로 맨해튼을 드나들며 활력 넘치게 변모한 뉴욕시를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길쭉한 맨해튼 섬에 마천루들이 들어선 지역은 남단의 로맨해튼과 허드슨야드가 있는 중앙의 미드타운지역이다. 이런 스카이라인이 조성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지역의 지질이 단단한 암반으로 초고층 건물들의 건축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초기 조건이고 공간적 집적의 모멘텀이 유지되는 이 두 곳에 뉴욕시 경제 성장의 사이클이 오랜 기간 담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이클에서는 미드타운에 해당되는 허드슨야드 주변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현수교 같은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온갖 높이의 빌딩들이 들쑥날쑥 혼재해 있다. 최근엔 연필처럼 얇고 삐쭉한 초고층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의 새로운 정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페리를 타고 허드슨야드로 넘어가 성공적인 재생사업의 하나로 칭송받는 하이라인을 걷고 있으면 주변 건물의 높이는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심미적 규제에는 정답이 없다. 선택 과정에서의 공정한 절차와 합리적인 시대적 타협이 요구될 뿐이다. 전문가들의 정답이 시민의 평범한 시각과 괴리되면 독선이 된다. 싫든, 좋든 도시의 성장은 강도가 커진 경제활동을 담아내는 고밀의 토지 이용이 필요하고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삼차원적인 해법이 고층이라는 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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