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불성실이 결국 ‘청문회 패싱’이란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김창기 국세청장을 전격 임명했다.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이 지지부진해 한 달이 다 되도록 인사청문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자 윤 대통령이 국정 차질이 계속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국세청장이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관련 제도가 생긴 이후 처음이다.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는 바람에 국민은 국세 행정에 대한 김 청장의 철학과 전문성 등을 검증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신상털기와 발목잡기로 국회 청문회 무용론이 비등하는 판이다. 이번 ‘청문회 패싱’으로 그 논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회 원 구성이 늦어지면서 청문회 불발 우려는 일찌감치 제기됐다. 그런데도 여야의 청문회를 열기 위한 협상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실제가 그랬다. 김 청장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에 송부된 게 지난달 16일이다. 그러나 20일이 경과한 지난 7일까지 청문회가 열리지 못했고, 윤 대통령은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했다. 그 기한인 10일까지도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고 청문회는 언제 열릴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윤 대통령으로선 무리수라는 비판이 따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임명 강행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김 청장의 청문회 패싱은 국정과 민생은 나 몰라라 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 모든 것을 거는 정치권의 민낯인 셈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청문회 패싱으로 인한 정국 경색이다. 당장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과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임명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권력기관을 하루빨리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식물화된 책임은 원 구성을 미루는 민주당에 있다고 반박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제 할 일을 못하고 그 책임은 서로에게 미루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 역시 개최가 극히 불투명하다. 더는 청문회를 건너뛰는 불상사가 생겨선 안 된다. 더욱이 박순애 후보자는 만취운전 전력이 확인돼 교육수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고 있다.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일은 이번 한 번으로 그쳐야 한다. 박순애·김승희 두 후보자마저 청문회를 패싱하게 되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