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 인재 양성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당도 즉각 특위 설치를 추진하는 등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 협업에 탄력이 붙었다.
문재인 정부 때 첨단산업특별법이 완성되고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반도체업계에서 가장 간절히 기대한 인력 양성에 관한 내용은 빠져 ‘속 빈 강정’이란 비난을 받았다. 업계는 이 법에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와 주 52시간 규제 완화 등을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여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내용이 수도권 대학 정원 자율화의 전면 실시로 읽힐 수 있다는 교육부 규제의 틀을 넘지 못한 것이다. 특별법에 인재 양성에 관한 내용이 담기긴 했으나 기업이 자금을 대 만드는 반도체 계약학과, 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 겉핥기에 그쳤다.
반도체가 국가의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은 기술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은 해마다 1만명의 반도체 인재 확보를 목표로 반도체학과 정원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고, 대학에는 1년에 두 번씩 신입생을 뽑을 수 있는 특혜를 줬다. 반면 한국은 해마다 대졸 이상 반도체 전문인력이 1600명 이상 필요한데 실제 졸업생 수는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향후 10년간 3만여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덕수 총리가 9일 이런 현실을 타개하겠다며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학도 반도체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에선 넘어야 할 허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이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이 법은 수도권으로 인구집중을 막기 위해 1994년부터 대학을 공장, 공공기관과 함께 인구집중유발시설로 규정하고, 신설하거나 입학정원 총량을 늘리지 못하도록 제한해왔다. 한 총리 말대로 정원을 늘리려면 반도체 등 첨단 학과의 늘어나는 입학정원은 입학정원 총량 제한을 받지 않도록 수도권정비법에 특례를 둬야 한다. 법 개정이 전제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문제여서 의회 권력을 쥐고 있는 민주당과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결국 야당과의 협치가 관건이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학과 대학 정원의 증원이 본격 이슈가 되면 지역균형 발전, 대기업 및 특정학과 특혜 지원, 지방 대학 역차별 등 해묵은 갈등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졸면 죽는다’는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 시대에 30년 낡은 규제에 묶여 우리만 퇴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래 번영을 위한 국익적 차원의 규제혁파라면 국민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