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 : 언제 벗어날 수 있을 거냐, 언제까지 슬퍼할 거냐고 묻지 마. 나도 내가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언제까지 슬퍼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러는 거다.
동석 :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슬퍼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중략) 우울증 걸리면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해 봐.
선아 : 몸은 늘 물에 빠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기분. 그리고 눈앞의 모든 게 깜깜하고 분명히 불빛이 많은데도 우울감이 들면 아무것도 안 보여. 앞이 깜깜해져.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중)
삶이 엉망이 돼가는데 비관만 하면서 스스로를 자꾸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선아는 아이를 방치하고 남편은 신경 쓰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생각만 중요해서 상담을 권유하는 남편의 말도 무시하고 우울에 갇혀 지내다가 이혼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요즘 좀 우울해. 그러니까 찾지 말아줘” “나는 비만 오면 왜 이렇게 우울한지 모르겠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우울이란 근심스럽거나 답답해 활기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울한 기분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살면서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우울 장애’라고 한다. 일시적 기분이 아니라 정신적 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된 상태를 일컫는다. 의욕이 없고 기분이 침체해 감정, 생각, 신체, 행동 등에 변화가 생김으로써 삶에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질환이다. 우울 장애는 시작과 끝이 있는 에피소드로 이뤄진 병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분명히 끝을 낼 수 있는 병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미국, 영국 등 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최소 2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의 경우 10명 중 약 4명이 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겪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2020년 우울증 유병률은 3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대한신경과학회는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데에 반해 치료에 대한 인식은 가장 낮다고 한다.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하면 환자의 80~90%가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으나 한국의 경우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아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전문적인 치료나 도움을 찾지 않는 환자 비율이 전체의 65~75%나 된다. 우울증에 빠지면 슬픔이 지속되거나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쓸데없는 일로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거나 염세에 빠져 모든 일에 의욕이나 관심이 줄어들기도 한다. 자칫 죄책감과 자책감을 느껴 죽음이나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울 장애를 결코 가볍게 생각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질환이 아니다. 반드시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제대로 된 진찰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말처럼 그렇게 쉬운 건 아니겠지만 마음을 돌이키려는 의지는 중요하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라. 위 드라마의 해당 회차 마지막 부분에 선아와 동석이는 번갈아가며 이렇게 되뇐다. “행복하고 싶다, 진짜.” 우울증을 앓더라도 행복하고 싶고, 행복할 수 있고, 또 행복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의 우리도 누구나 다 있는 우울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인정해줘야 한다.
김은성 호남대 작업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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