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가 풀린 것도 모자라 이젠 날개까지 달았다. ‘물가’ 얘기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이 딱 그렇다. 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나 올랐다.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당 환율이 1500원을 오르내리던 때다. 수입물가 압력이 엄청났다. 지금은 그런 특별한 경제위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물가가 고공행진이다. 심지어 상승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저물가의 상징인 1%대 물가가 깨지고 2%대로 오른 게 지난해 4월(2.5%)이다. 그후 3%대로 올라선 게 10월이고 그건 올해 3월(4.1%) 깨졌다. 모두 5~6개월씩은 버텼다. 하지만 4%대 물가는 불과 두 달 만에 뚫렸다. 초입도 아니다. 단숨에 중반(5.4%)이다. 6월 물가는 불과 한 달 만에 6%대로 넘어갈 수도 있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그동안의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공산품 가격과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면서 물가는 전반적이고 연쇄적인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근원물가와 생활물가가 동시에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그런 연유다. 산유국 모임인 OPEC+가 3일 증산을 합의했지만 당일 국제유가가 올랐을 정도로 상승세는 강하다. 여기에다 한 번 오르면 상당 기간 지속되기 일쑤인 곡물 가격도 여전히 오름세다. 기상 이변으로 흉작이 겹친 데다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물가의 정점은 아직 멀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물가를 통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생 변수가 워낙 강하니 정부 정책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별로 없다. 유류세 인하와 주요 수입 원자재 무관세(0%) 적용 등 웬만한 카드는 이미 거의 다 사용했다. 3조원 넘는 감세에도 물가 하락에 미치는 영향은 불과 0.1% 정도다.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폭우를 달랑 우산 하나로 버티는 꼴이다.
고물가는 서민에게 훨씬 고통스럽다. 실제 소득을 앗아가는 금리 인상까지 동시에 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고소득층이야 걱정할 게 없다. 중산층도 소비 성향을 낮추면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다. 1000원짜리 라면을 800원짜리로 바꿔 먹는 식이다. 하지만 더 낮춰 소비할 상품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고물가는 가만히 앉아서 주머니 털리는 일이다.
결국 물가를 떨어뜨릴 정책수단이 더는 없다면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은 취약계층에 지원을 넓히는 서민안정대책이 돼야 한다. 찔끔 대책이 아닌 획기적 대책이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