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의 막대한 적자가 주요 경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올 1분기에만도 7조7869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역대 최대 적자’라는 우려가 신문지상을 장식했었는데 올해는 1분기에만도 이를 거뜬히 추월했다. 올해 말까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있다. 최근의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같은 대외 변수의 영향도 컸지만 무엇보다 직전 정부에서의 이른바 ‘탈원전’ 에너지 정책과 전기요금 억누르기가 적자폭 확대의 주된 배경이다.
한전의 영업적자는 전기요금 인상과 국민세금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가 다른 묘책을 제시했다. ‘전력시장 긴급 정산 상한가격제도’란 이름으로 한전이 구입하는 전력도매가격(SMP)에 캡을 씌워서 전력구입비를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전의 손실을 민간 사업자를 포함한 발전사에 떠넘기는 꼼수로, 발전사들까지 수익창출이 어려워 동반 부실화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 수급원리와 가격메커니즘을 무시한 반시장적 정부 개입으로 읽힌다.
지난 5년간 동결된 전기요금으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가정용의 경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이고, 미국의 79%, 일본의 40%, 독일의 31% 수준이다. 산업용 역시 OECD 평균의 85%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 선진국들은 전기요금을 지속해서 인상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 와중의 정치적 논리에 압도돼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년간만 해도 발전원가가 2배 이상 급등했음에도 전기요금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다 보니 전기를 생산해 팔면 팔수록 한전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이처럼 낮은 전기료는 또 다른 경제 문제를 야기한다. 시장가격이 싼 상품은 과소비가 필연이다. 공익사업(public utilities)에 의해 제공되는 전기서비스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력 소비량은 연평균 2%씩 늘어나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든 선진국과 대비된다. 우리나라 1인당 전력소비량이 OECD 평균의 1.4배, 세계 평균보다는 무려 3.4배나 높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 발간 ‘주요 세계 에너지 통계 2020’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물론 가정용보다는 산업용의 과소비 비율이 훨씬 높다.
낮은 전기료에 따른 이러한 에너지 과소비 문제는 고질적인 한전 적자 문제와 연동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 설정에는 시장에서의 수급 논리가 우선으로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적 논리는 가급적 배제하되 원가에 연동되는 요금 설정 원칙이 세워지고 지켜져야 한다.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의 변동분 등이 일정 부분 요금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다. SMP 상한 설정 등과 같은 일종의 ‘시장 교란’ 편법은 배제하되, 선진국들처럼 적정 수준까지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전의 적자폭 감소와 더불어 가계와 기업의 에너지 과소비 억제를 위한 시장 중시의 바람직한 인센티브는 국민세금 쏟아붓기가 아니라 바로 ‘전기요금의 현실화’이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2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