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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임금피크제 재설계 필요성 제기한 대법 판결

정년연장이나 업무량 감소 등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직원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임피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임피제를 시행하는 기업 다수가 고령직원의 인건비 감축을 목적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상황이라 이번 판결의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당장 노동계는 임피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합리적 이유의 충족성을 놓고 노사 간 대립이 불가피해 유사소송도 줄을 있는 등 일선의 혼란이 우려된다.

대법원은 노사가 임피제에 합의했더라도 합리적 이유가 결여됐다면 효력이 없다며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임피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과 업무강도의 감소가 있었는지, 감액된 제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이다. 이번 소송에서 대법원이 주목한 것은 전자부품연구원이 정년연장 등 아무런 동기부여 없이 55세 이상의 기준을 설정해 A연구원의 임금을 깎는 등 불이익을 줬다는 점이다. 연구원은 기존 61세 정년을 임피제가 민간기업 전반으로 확대된 이후에도 변동없이 유지했다. 대법원은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직원에 비해 떨어지는데 오히려 55세 이상 직원들만 급여가 감액됐다고 지적했다.

임피제의 허를 찌른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사례는 대다수 일반 기업이 적용 중인 상생형 임피제와 거리가 있다. 많은 기업의 노사가 55세였던 정년을 60세로 5년 더 늘리는 대신 회사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데 합의해 공존해왔다. 이는 청년고용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의미도 크다. 임피제를 적용하되 근로시간을 줄였거나 정년을 연장했다면 유효하다는 2013년 국민건강보험 판례도 있다. 이번 사례를 일반화해 산업계가 소모적 갈등에 휩싸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임피제 대상자들의 업무량과 강도를 조정하는 한편 청년 채용에도 적극 나서는 등 합리적 이유를 충족시키는 노력에 더 힘써야 한다.

정년 60세의 법적 의무화가 시행된 지 6년이 지나면서 임피제의 재설계작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년을 65세로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노동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는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60% 정도가 아직도 연공서열식 호봉제인 상황에서 정년 추가 연장은 기업의 인건비 급증과 청년채용 급감이라는 부작용을 부른다. 성과연봉제,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의 개편과 고용유연성 확대 등 정년확대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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