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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일 칼럼] 지금 광주가 울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던 전두환이 죽었다. 며칠째 미세먼지에 가려 잿빛 하늘이었던 광주는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던 비슷한 시각 광주시청사 위로 무지개가 피었다.

5·18만 떠올리면 암울했던 광주는 전두환의 죽음으로 늦게나마 희망의 징조인 무지개가 어둠을 뚫고 서광처럼 비친 것은 아닌가.

전두환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그 정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는 40년이 지나도록, 아니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조차 사죄하지 않았다.

지난 8월, 5·18 당사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이 광주에서 열리는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섰을 때 카메라에 잡힌 그의 얼굴은 참으로 초췌했다. 대중들의 눈에는 그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 유고 시 보안사령관으로 서슬 퍼렇게 정권을 찬탈하던 전두환은 어느덧 간데없고 죽음이 임박한 초라한 늙은이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가 광주와 국민 앞에 사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끝내 외면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데 학살자 전두환은 왜 그렇게 뻔뻔하고 당당했을까. 반란수괴 및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수감 2년 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90세의 천수를 누렸다.

또 뇌물수수죄로 추징금 2205억 원이 확정됐으나 아직도 956억 원은 환수되지 않고 있다. 당시 추징금 일부를 낸 뒤 이제 예금 자산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말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전두환의 죽음에 광주는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다. 분노를 삭일 수 없다. 그래서 원통해서 운다. 80년 5월 탱크와 총칼로 무장한 계엄군이 마치 적진을 향해 진격하듯 전남도청 앞 광장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고서도 아직도 최초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있다. 진실 찾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학살자로 지목된 전두환은 자백도 사죄도 없이 죽음을 맞았다. 그래서 광주는 그의 죽음마저도 유죄라고 한다.

5월 단체들은 “오월 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 행위를 명명백백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살 처벌 책임자로서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상 규명은 진행 중이고 특히 발포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씨를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재판정에 세운 고소인 조영대 신부는 “3년 넘도록 법정 다툼을 벌여왔는데, 결국 결심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 떠나 허망하다”고 했다. 이어 “뉘우침과 역사적 정리 없이 떠나 더욱 원망스럽고 한스럽다”고 했다.

전두환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아돌프 히틀러와 닮은 꼴이다. 당시 히틀러에게는 조력자 괴벨스가 있었다. 죽은 전두환에게도 아직 살아있는 조력자들이 있다. 이제 그들이 역사 앞에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도 전 씨 측근인 하나회 출신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은 오늘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5·18은 북한군이 300여 명이나 남하해 일으킨 사건 아닌가”라며 막말을 쏟아냈다. 5·18이 북한군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여전히 반성하지 않은 모습이다.

조력자들은 광주 학살의 현장을 은폐하고 증거를 없앴다고 안심할지 모르겠지만 생의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이라도 처절하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길 바란다.

지난달 생을 마감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광주가 지목하는 광주 학살 주범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노재헌씨가 여러 차례 아버지 대신 광주 5·18묘역을 찾아 참배하며 사죄의 모습을 보였다.

물론 광주가 그렇다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유언을 통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전했다. 광주가 전두환과 노태우를 달리 보는 이유다.

이제라도 아직 살아남은 전두환의 조력자들이 최초 발포 명령과 헬기 사격 등에 증언하고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까.

헤럴드경제 호남취재본부 박준일 대기자.

julyj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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