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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빈 오늘(8일) 영결식, ‘영원한 산 사나이’…“산에 잠들다”
손가락 잃고 좌절·방향…하지만 “다시 산으로”
장애인과 청소년에게 희망 줘…“노력이야말로 꿈의 정상에 설 수 있는 힘이다”
고 김홍빈 대장의 영정과 청룡장이 시민들의 손에 들려 나오고 있다.

[헤럴드경제(광주)=황성철기자] 열손가락 없는 장애인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오늘(8일) 돌아올 수 없는 등반을 떠났다. 광주시 산악연맹(회장 피길연)은 9일 오전 10시 고 김홍빈 대장의 영결식을 갖고 김대장을 산악인과 시민 등 모두의 가슴에 묻었다.

김홍빈 대장은 1964년에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벌교중학교·매산고등학교를 거쳐 1983년 송원대학교 진학 뒤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김 대장은 1989년 에베레스트,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 대원으로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김 대장의 꿈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급)를 단독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하면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사고 16시간 만에 구조돼 10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7차례의 수술 끝에 10개의 손가락을 모두 절단했다.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김 대장은 방황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김 대장은 6년 만에 다시 산으로 돌아왔고 무등산 등 국내의 산을 오르며 꿈을 다시 키웠다.

“손가락 없이 고산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김 대장 맞춤형 특수 장비를 제작해준 동료 산악인들의 도움을 받아 1997년 유럽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2009년 남극 빈슨매시프(4897m)등정에 성공하면서 장애인 최초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을 세웠다.

자신감을 얻은 김 대장은 8000m급 14좌 봉우리 완등을 목표로 세우고 2006년에 가셔브룸2(8035m)과 시샤팡마(8027m), 2007년 에베레스트(8850m), 2008년 마칼루(8463m), 2009년 다울라기리(8167m), 2011년 초오유(8201m), 2012년 케이2(8611m), 2013년 캉첸중가(8586m), 2014년 마나슬루(8163m)를 등정했다.

잠시 숨을 고른 김 대장은 2017년 로체(8516m)와 낭가파르밧(8125m)을 잇따라 등정했으며 2018년 안나푸르나1봉(8091m), 2019년 가셔브룸1(8068m)을 완등하면서 8000m급 14좌 중 13좌 봉우리 정상에 섰다.

산을 오르면서도 동료들의 도움을 돌려 줘야 한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김 대장은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 단체를 설립, 꿈을 포기한 장애인과 청소년을 산으로 초대해 열 손가락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용기와 희망을 심어줬다.

14좌 완등 직전의 고 김홍빈 대장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한차례 미룬 마지막 8000m급 봉우리 브로드피크 완등을 위해 1년 여 만인 지난 6월 1일 6명의 원정대를 구성하고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김 대장은 브로드피크를 끝으로 8000m급 14좌 봉우리를 모두 올랐으며 하산을 하던 중 실종됐다.

김 대장은 “14좌 완등이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이 됐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하산에 나섰지만 조난을 당해 가족과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김 대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전히 “불편함을 용기로 극복하고, 불가능을 새로운 가능성을 바꾸는 노력이야말로 꿈의 정상에 설 수 있는 힘이다”는 글이 남겨져 있다.

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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