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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스펙은 스펙일 뿐 능력의 척도 못 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이나 사회봉사 실적 등이 마치 능력의 척도라도 되는 양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경쟁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어학연수에 나서는 것도 이른바 ‘스펙 쌓기’의 일종이었다. 그 결과 저마다 천편일률적인 실적을 제시하는 바람에 차별성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기업의 채용부서 직원들이 입사지원 서류에 비슷한 내용들로 넘쳐나는 바람에 넌더리를 낸다는 얘기도 그리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금융권을 시작으로 하반기 취업 시즌이 본격 시작되면서 선발기준에서 스펙에 대한 배점이 줄어들거나 아예 참고하지 않기로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서류상의 과외활동을 진정한 실력의 척도로 인정하기에는 어딘가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취업을 위해 형식적으로 끼워붙이는 식이라면 거기에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기업체에서 취업준비생들에게 스펙을 요구했던 의미는 대학 4년 동안 자기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어떤 고민을 하며 지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학력이나 학점을 떠나 개인의 사회적 적성과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궤적을 측정하려는 데 뜻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스펙이 취업을 위한 부수적인 요건으로 변질되면서 애초의 취지가 퇴색해버린 것이다.

일부 은행과 기업에서 스펙에는 드러나지 않는 내면적인 소양을 확인하려고 다양한 채용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등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면접을 통해 재능과 역량을 증명하도록 하거나,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함으로써 베스트셀러에 대한 토론면접 배점을 높이기로 했다고도 한다. 현장 인터뷰를 통해 끼와 열정이 넘친다고 판단되면 서류 전형을 면제해주는 기업도 있다. 일관성 없는 대외활동 위주의 스펙보다는 내실 있는 인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지원자들이 진정성을 갖고 갖춘 활동경력마저 무시돼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껏 스펙 위주로 이뤄졌던 채용방식은 바뀌어야만 한다. 그동안의 관행으로 사회적 낭비를 부추긴 측면이 다분했으며, 스펙이 화려할수록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채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업무에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며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는 스펙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스펙이 좋아야만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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