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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이해준> 안철수가 가야 할 길은
이상이 아무리 탁월해도
국민과 호흡하며 검증 받아야
대선 출마할 의향 있다면
먼저 현실 정치에 나서야


먼저 필자 가족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술수와 사기가 판치는 현실에서 원칙과 곧은 생각을 갖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원장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삶의 중대한 전환기마다 쓴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등의 책을 읽고 10대의 아이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장기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서점으로 달려가 ‘안철수의 생각’을 펼쳐들었다. 우리의 ‘영웅’인 안 원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올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여러 모로 궁금했다. 역시 지난 10여년 사이에 안 원장은 많이 변해 있었고, 그의 시야는 정치와 사회 전 분야로 확대돼 있었다.

안 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공동체가 붕괴되고,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현실을 아프게 받아들였다. 그가 제시한 복지와 정의, 평화의 세 가지 화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시대의 좌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저술들이 전해주었던 감동은 크게 줄었다. 왜일까. 무엇보다 사회를 보는 안 원장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사회가 모순과 불합리 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던 시선에서 날카롭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안 원장이 대선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그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국민에게 바람직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그의 몫이자 의무가 됐다. 그는 정치와 사회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한몸에 받고 있고, 정치권에선 그가 대선에 나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최종 선택을 앞둔 그가 간과해서는 안 될 몇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멘토와 현실정치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 안 원장은 ‘바른생활 사나이’나 ‘국민 멘토’라는 이미지로 고평가된 측면이 있다. 그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지지율이 높은 이유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살벌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정치에 나선다면 그는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고, 그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할 경우 국민의 실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둘째, 지금 한국 정치에 ‘혁명’이 필요한지 여부의 문제다. 안 원장의 구상은 ‘낡은 체제’를 뒤집는 정치 혁명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를 향한 긴 여정에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의회 또는 지방정부에서 능력을 보여준 인물들이 당내 투쟁을 거쳐 대권으로 향하는 절차도 정착되고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 과정이며 교육장이다.

셋째, ‘지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질병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퇴행한 가장 큰 이유는 이념과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조차 협력하지 못하는 풍토였다.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 내부조차도 대의(大義)를 좇지 못하고 소아적 이기주의로 판을 그르친 경우가 허다했다. 정치에 혁명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때문에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면, 먼저 정치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차기 대통령이 아니라 안철수 식의 ‘바른 정치’가 목적이 돼야 한다. 지도자의 이상이 아무리 탁월하다 하더라도 반대진영을 포함한 국민이 동의하는 수준에서 변화가 가능한 법이다. 국민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이해집단을 설득하고 검증받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안 원장에게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지금의 ‘이미지 정치’에서 신속히 벗어나야 한다. 실체조차 모호한 이미지를 등에 업고 대선 막판에 나서 당선을 노린다면 정치의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다. 정치는 일회성이 아니라 장구한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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