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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궁핍, 시대의 기억들
가난을 겪지 않은 후보들이 겨룰지도 모를 이번 대선은 이런 점에서도 흥미롭다. 흥미를 한 꺼풀 벗겨내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거대한 선택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이번 대선이 중요한 이유다.



‘안철수의 생각’에 가난이 있다는 게 낯설다. 의사인 부친을 둔 안철수는 유년에 가난을 직접 체험하진 않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가 관용구처럼 따라다니는 한국 정치인들의 훈장(?) 같은 이력을 그는 갖지 않은 셈이다.

가난을 겪지 않았을 안철수의 생각에 가난은 중요한 키워드다. 주말이나 방학에 낙후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설보다 더 잔인했던 가난’이 사람의 존엄을 깨뜨릴 수 있다는 간접적인 체험을 한 것이다. 대통령의 딸, 박근혜 역시 가난의 직접 체험은 있을 리 없다. 여론조사 1, 2위 후보 2명 모두 가난에 대한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갖진 않았다. 박근혜-안철수 양자대결이 이뤄진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가난한 집에 태어나지 않은 후보들의 대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유년시절의 기억은 한국 정치인들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최근 대통령을 했거나 현직인 노무현,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까지 내리 3명이 가난한 수재들이 다녔다는 상고 출신이란 점이 이를 방증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근 내놓은 자서전에도 가난이 한 장(章)을 장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의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라고 얘길 한다. ‘왕년에 내가 해봤는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이 대통령은 고학을 했다. 그나마 거제에서 멸치잡이 사업을 크게 했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환경에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정도가 ‘부잣집 아들’로 가난한 대통령의 반열에서 예외다.

빈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두 가지 태도가 전통적으로 맞선다. 가난한 사람들을 일으켜세우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원조를 해야 한다는 ‘공급론’, 원조가 오히려 시장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에 원조보다는 독자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수요론’이 그것이다. 어떤 논리가 우위에 있든 중요한 것은 가난한 이들의 눈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주는 것이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경제민주화, 복지다. 이런 논의 바닥에는 양극화 해소 없이 실질적인 통합이 없다는 정치적 함의가 깔려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정글의 법칙’ 시스템에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가난을 직접 체험한 세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에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가난의 직접 체험이 가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진 않은 셈이다. 오히려 직접 체험보단 간접 체험이 객관을 확보하고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할지 모른다.

헤럴드경제와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이 ‘나는 저소득층’이라고 애기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의 국민 2명 중 1명이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만큼 양극화에 대한 국민들의 감수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다.

가난을 겪지 않은 후보들이 겨룰지도 모를 이번 대선은 이런 점에서도 흥미롭다. 흥미를 한 꺼풀 벗겨내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거대한 선택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이번 대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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