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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박종구> 에스프레소와 뿌리기술
베이비부머 떠나는 산업현장
뿌리기술도 함께 사라질까 걱정
첨단산업 나날이 발전 거듭해도
기술의 정수, 제조업이 근간돼야


최근 우리나라 커피전문점 시장이 급격한 성장 추세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부터 소규모 동네 자립형까지 그야말로 우후죽순이다. 더러는 빌딩 숲 사이로, 더러는 아파트단지 어귀까지 한두 평 남짓한 규모에서도 도시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세상이다. 수많은 커피전문점만큼이나 갖가지 종류의 커피가 사람들의 혀끝을 즐겁게 한다. 카푸치노, 카페라테, 캐러멜마키아토, 카페모카, 아메리카노 등 커피전문점마다 공통적으로 판매하는 커피가 있는가 하면, 자체적으로 개발한 독특한 커피도 새롭다.

하지만 어느 커피전문점을 막론하고 메뉴판에서 빠지지 않는 커피가 있다. 바로 에스프레소이다. 양도 적고 쓰고 강한 맛 탓인지 찾는 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든 커피의 종류가 에스프레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세상 모든 물질과 이치에는 본질, 정수(essence)라는 것이 있다. 그 본질에 살이 붙고 변형되어 새로운 맛과 모양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정수 그 자체는 언제나 존재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커피가 있지만, 그 한가운데 에스프레소가 있다.

오늘날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융합화와 세분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기술과 기술이 만나 또 다른 융합기술로 발전하는가 하면, 인문과 기술이 결합해 휴머니즘이 깃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그렇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터치패드는 기계와 인간의 교감을 가능케해 준다. 이렇게 고도로 발전된 기술세계의 저변에는 언제나 뿌리기술이 존재한다. 기계ㆍ전기ㆍ용접ㆍ배관 등 전통적인 제조기술이 바로 첨단으로 진화하는 기술세계의 에센스다. 최근 들어 이러한 기초기술 분야에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날 조짐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정년을 맞이하여 썰물 은퇴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714만명의 베이비붐 세대 중 약 75%에 달하는 549만명이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산업 현장을 떠난다는 추산이다. 문제는 베이비부머가 집중되어 있는 산업 분야가 제조업이고 소위 뿌리기술이 숨쉬는 곳이라는 데 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경제구조를 튼튼히 하기 위해 제조업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한때 미국의 제조 산업은 다국적기업에 의해 후진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에 의존했다. 그러나 중국 등 산업화 후발국가들의 인건비 상승과 규제 등에 따른 수입단가 상승으로 여러 부작용과 함께 제조업 공동화 징후가 도처에서 나타났다. 높은 실업률과 경제 불황을 겪은 미국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기초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제조업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 산업이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제조업을 근간으로 한 뿌리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기술발전과 산업수요의 변화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첨단산업과 관련한 학과 편성으로 방향키를 조정하고 있다. 첨단기술과 신성장동력 분야로의 구조개편 없이는 기술교육의 미래도 없다. 역시 핵심은 제조업에 바탕을 둔 뿌리기술 인력의 양성이다. 우리 기술로 생산되어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선박과 자동차들은 기계ㆍ용접ㆍ배관 등 뿌리기술이 없으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든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습장에서 땀방울을 훔치며 기술을 익히는 학생들의 손끝에서 기술한국의 씨앗이 살아 움트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잔에 젖어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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