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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경희> ‘언더도그 효과’와 진정성
약자 향한 대중의 연민
선거의 주요 변수로 작용
대망 꿈꾸는 리더라면
스킬보다 진정성 우선돼야


가수 이효리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표절 논란 후 무대를 떠난 심경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살림집을 겸했던 아버지의 이발소를 찾아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을 낱낱이 공개할 때에는 화장기 없는 ‘생얼’을 그대로 드러냈다.

방송 후 트위터에는 위로와 격려의 글이 쏟아졌다. 이효리의 고백은 시청자의 공감과 연민을 동시에 얻어냈다.

김헌식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공인들의 충격 고백과 공개 사과는 TV를 통한 감성적 어필이라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최후의 무기로서 대중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논란의 당사자인 공인들에게 면죄부를 안겨주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지상파, 케이블 방송에서는 개인의 고백이나 사과 형식을 채택한 프로그램들이 매일 방영될 만큼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들도 진심 어린 사과는 치유 효과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실제로 ‘고개 숙인 스타’가 관대한 평가를 받는 경우는 국내에서도 흔하다. 배우는 부족한 연기력이나 비호감 이미지를 희석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치, 스포츠 분야에서 자주 나오는 ‘언더도그 효과’다.

약자를 의미하는 ‘언더도그(Underdog)’는 곰을 제압하기 위해 두 마리의 사냥개가 훈련받는 방식에서 유래했다. 강한 개(Topdog)는 곰의 머리를, 약한 개(Underdog)는 곰의 하체를 공격하도록 훈련시키는데, 생명을 잃을 위험이 더 높은 ‘언더도그’를 지지하는 대중 심리가 반영돼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언더도그 효과’라고 한다.

대중들이 기대하는 건 약자의 반전이다. 미국의 유력 경제잡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JK 롤링의 베스트셀러 해리포터, 2010년 월드컵에서의 뉴질랜드-우루과이전,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소통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디지털 시대에 하위 문화, 비주류가 지지를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계에도 수입돼 지난 4ㆍ11 총선에서 이 읍소 전략은 유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언더도그 효과가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도 적지 않다. 위키백과에서 한글로 ‘인사청문’이란 키워드를 입력하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가 요직에 내정했다가 사퇴 압력으로 물러난 문제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두고 반복되는 공식 사과는 진부한 장면이 돼버렸다. 2일 취임한 김기용 경찰청장도 자녀 교육 문제로 위장전입을 하게 됐다며 처벌이 아닌 관용을 구했다. 언더도그 효과 덕인지, 광우병 논란에 가린 탓인지, 그는 무사히 통과의례를 치렀다.

CNK 주가 조작, 민간인 불법 사찰, 파이시티 게이트가 불거진 상황에서 또다시 청와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재승·김호 공저 ‘쿨하게 사과하라’에 따르면, 19~20세기에는 낙오자의 언어였던 ‘사과’는 21세기 들어 리더십의 언어가 됐다. 책이 제시한 ‘사과’가 갖춰야 할 충분조건 중 첫 번째 항목은 핑계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변명이 앞서면 진정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청춘 멘토로 불리는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도 ‘진정성’을 올해의 첫 번째 키워드로 꼽은 바 있다. 대망을 꿈꾸는 리더에게 어떠한 정치적 기술이나 전략보다 필요한 건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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