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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박경신> 폰트파일 저작권 형사고소 소동
폰트 자체엔 저작권 없어
폰트회사 합의금 요구 빈발
복사집 주인 등 서민들만
애꿎은 피해 입어서야


불법 폰트파일을 사용했다고 형사고소를 위협받는 서민이 늘어가고 있다. 복사집 주인, 연극홍보물 디자이너, 웹사이트 디자이너, 일반 블로거 등등 직업만 들어봐도 비정규직 냄새가 풀풀 나는 사람들에게 법무법인을 앞세운 폰트파일 업체들이 형사고소를 위협하며 1건당 100만~300만원씩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적자로 끝났을 대학로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포스터에 자사의 폰트가 사용됐다는 이유로 200만원의 합의금을 달라는 식이다. 폰트파일도 틀림없이 폰트를 구현하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며 이를 영리적인 목적으로 불법 복제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거나 과도한 배상을 해야 한다면 저작권법의 원래 목적인 문화예술의 창달을 더욱 위축시키는 것이 된다.

법적으로 잘못이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첫째 폰트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폰트는 작품으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도구로서의 성격도 있다. 이렇게 예술성과 기능성이 혼재된 폰트를 보호기간이 저자 사후 50~70년으로 매우 긴 저작권으로 보호해주면 폰트가 가진 기능성 자체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보장해주는 효과가 나게 된다. 기능성, 즉 어떤 물건이 유용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장해주는 제도는 특허제도이고 이 제도는 보호기간이 20년밖에 되지 않는데 폰트에 대해서 훨씬 긴 독점기간을 보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래서 자동차 외장, 의류 디자인, 구두 디자인 등 보통 기능성을 구현하는 디자인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폰트파일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어떤 폰트가 예뻐서 그것을 스스로 스캐닝이나 비트맵 작업을 해서 새로이 디지털화하거나 손으로 베꼈다면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둘째, 물론 이렇게 폰트 모양을 새로이 디지털화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폰트파일을 그대로 복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불법 폰트파일 사용 자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타인의 사진을 무단복제할 때 불법 다운로드한 포토샵을 이용했다고 해도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했을망정 포토샵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 최근 1심법원에서 ‘불법 복제된 저작물로 새로운 저작물을 만드는 것은 별도의 저작권 침해’라고 판시한 바 있는 모양인데, 법리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불법 복제된 사진을 포함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그 사진에 대한 저작권 침해라는 생각에 그렇게 판결한 것 같은데, 폰트 자체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것을 간과한 판결이다. 불법 폰트파일로 만든 도안에는 폰트가 시각적으로 포함돼 있지만 그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셋째, 그렇다면 불법은 언제 발생할까. 바로 폰트파일을 복제할 때다. 하지만 폰트파일을 사적인 목적으로 복제한 사람은 면책이 된다. 예를 들어 디자인업자가 아닌 사람이 일회성 사용을 위해 폰트파일을 복제했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넷째, 디자인을 외주 준 경우에 수주 디자이너가 불법 복제를 했고 이에 대해서 발주자가 몰랐다면 발주자는 책임이 없다.

어려운 폰트개발회사들의 권리도 보호돼야 하며 이들이 자신의 주관적인 상황에 따라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작권은 문화예술의 창달을 목표로 창작자와 이용자 사이의 균형을 잡은 법이지 창작자만을 보호하려는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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