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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부러진 화살을 이으려면…
태광산업·김진숙 재판

관행 깬 판결 강한 울림

법 정신 강조한 판결문

사법신뢰 회복 촉매제 기대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지만 기사 쓰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런 작업이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건데 왜 기사 작성이 매번 고통으로 다가올까. 취재한 팩트를 객관적 잣대로 판단해 메시지를 담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기사만 쓰지 않으면 기자는 최고의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판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들이 늘 쓰는 판결문 역시 창작의 고통에 버금가는 힘든 작업이다. 판결문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불쑥 ‘공장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일선 법원이 내놓은 두 판결이 유독 눈에 들어온 때문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서부지법. 이곳에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태광산업 이호진 전 회장과 이선애 전 상무 모자(母子)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김종호 부장판사)는 아들인 이호진 전 회장에게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어머니 이선애 씨에 대해서도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주목을 끈 것은 양형 때문. 어머니 이 씨는 올해 84살. 회사 측에 따르면 이 씨는 뇌졸중을 앓고 있고 거동도 불편하다. 검찰도 이를 감안해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그러나 이 씨를 법정구속했고, 이 씨는 교도소에 수감됐다. 형 집행정지 상태인 아들도 곧 수감될 예정이다.

선고 순간 법정은 ‘놀라움’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모자에게 동시 실형이 선고된 때문이다. 양형 이유는 “사안이 엄중하고 형량은 쪼갤 수 없다”는 판결문 속 판사의 한마디에 그대로 함축돼 있다.

며칠 앞선 지난 16일 부산지법.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309일간 크레인 농성을 한 혐의로 기소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 법원의 형사4단독 최환 판사는 김 지도위원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역시 판결문이 눈길을 끈다. 최 판사는 “목적의 주관적 정당성만으로 수단의 불법성이 용인되는 시기도 이제는 반드시 지나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두 판결의 판결문 속에는 살아 있는 법 정신의 관행과의 단절 의지가 담겨 있다. 전자는 ‘특권’처럼 용인됐던 권력층에 대한 ‘관용’의 악습을 깬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과 특별사면’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즐겨온 경제계에 경종을 울렸다. 김진숙 씨에 대한 판결 역시 법 정신 자체를 강조한 판결이다. ‘범법 사실’에만 초점을 맞춘 양형이라는 논란은 있지만, 판결문 속에 담긴 법 정신이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는 상당히 무겁다.

사법부가 무척 시끄럽다. SNS를 통해 노출된 서기호 판사의 ‘가카 빅엿’, 이정렬 판사의 ‘가카새키 짬뽕’ 발언 탓이다. SNS로 대표되는 ‘디지털 입’과 판결문으로 상징되는 ‘아날로그 입’을 둘러싼 논쟁은 사법부 전체를 고민에 빠뜨렸다.

잠시 돌아보자. ‘디지털 입’은 빠르게 그리고 폭풍우 같은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러나 그 울림은 두 판결문에 나타난 ‘아날로그 입’보다 깊고 컸을까.

판사는 판결로 먼저 말해야 한다. 이는 기본이고, 그래야 그 울림이 크다. 두 판결이 사법부의 ‘부러진 화살’을 다시 튼튼히 이어주는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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