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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 역시 간판스타…미래 블루칩엔 정연두
미술평론가들이 꼽은 지난 10년 한국현대미술 대표작가는…
권진규·박생광·오윤 작고작가 나란히 5위

재미 요절작가 차학경 재조명 요구 높아

이우환·서도호 등 해외파에 후한 점수



지난 10년간 한국 현대미술계를 대표한 최고의 작가는 누구일까? 이 같은 질문에 전문가들은 단연코 ‘예술 테러리스트’인 백남준(1932~2006)을 1위로 꼽았다. 이미 20여년 전에 지금의 ‘초고속정보미디어 사회’를 예견했던 백남준은 타계한 지 5년이 넘었음에도 ‘막강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결과는 김달진미술연구소(소장 김달진)가 개소 10주년을 맞아 2000년 이후 한국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연구소 측은 100명에게 8개 문항을 의뢰했고, 이 중 53명이 조사에 응했다. 연구소 측은 3표까지 복수 응답을 허용했다.

1위 백남준에 이어 전문가들은 김환기, 이우환, 박수근을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았다. 5위에는 이중섭, 권진규, 박생광, 오윤, 박이소 등 작고 작가와 김수자, 서도호가 나란히 뽑혔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톱 10’ 중 3명의 생존 작가인 이우환, 김수자, 서도호는 모두 해외에 머물며 미국과 유럽을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라는 점. 글로벌 시대를 맞아 좁은 국내가 아닌 넓은 무대(해외)에서 평가받아야 함을 말해주는 결과인 셈이다.

응답자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간판스타로 비디오예술 등을 통해 예술의 표현 범위를 확장시킨 백남준과 ‘한국 추상미술 1세대 작가’인 김환기를 앞다퉈 높게 평가했다. 또 사후에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권진규, 박생광, 오윤, 박이소를 최고의 작가로 뽑았다.

한국 현대미술작가 중 ‘재조명해야 할 작가’를 묻는 설문에선 재미 요절 작가 차학경(1951~1982)이 압도적으로 1위(18표)에 올랐다. 부산 출생으로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버클리대에서 문학과 미술을 전공한 차학경은 문학, 개념미술, 퍼포먼스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다. 특히 언어에 뛰어나 ‘기관’과 ‘받아쓰기(Dictee)’라는 저서를 내며 혁신적 페미니즘 미술을 선보였다. 결혼 직후(31세) 뉴욕의 주차장에서 괴한의 피습을 받아 요절하는 바람에 더는 예술혼을 펼치지 못했으나 그의 저서 ‘Dictee’는 요즘도 미국 대학 교재로 쓰이고 있다. 199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긴 했지만 국내에선 크게 조명되지 못한 상태다.


2위에 오른 김구림(1936~ )은 1950년대 말 앙포르멜, 60년대 서정적 추상 이후 플라스틱, 기계 부속, 비닐 등 버려진 재료로 매체 실험과 오브제 작업을 펼치며 미술 실험을 거듭한 것이 높게 평가됐다. 김구림과 함께 2위에 오른 박현기(1942~2000)는 한국 비디오미술의 선구자임에도 백남준 그늘에 가려온 것이 ‘다시 평가돼야 할 작가’에 오르게 했다. 서구의 비디오예술이 기술에 탐닉하는 데 비해 박현기는 동양의 정신문화를 표현하는 도구로 이를 해석한 것이 다르다.

2000년 이후 국내외적으로 활약이 두드러진 작가에는 김수자(19표), 서도호(18), 이우환(13), 정연두(12), 이불(9), 이용백(9)이 1~5위에 올랐고 서용선, 양혜규, 배병우, 강익중, 전광영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최근 10년간 작고한 미술인 가운데 한국 미술 발전에 공헌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는 백남준(45표), 이경성(평론가ㆍ36표), 박이소(작가ㆍ23표), 김창실(화랑주ㆍ20표), 이원일(큐레이터ㆍ8표)이 선정됐다.

백남준, 김환기, 이우환처럼 명성과 예우를 함께 누리는 한국 작가가 있는가 하면, 미국 뉴욕을 무대로 진보적 예술작업을 펼쳤던 요절 작가 차학경은 국내에서 별반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그를‘ 재조명해야 할 작가’ 1위로 꼽았다.

이번 조사에선 ‘45세 이하 젊은 작가 중 향후 활동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에 대한 설문도 포함됐다. 그 결과 1~5위 정연두(17표), 박찬경(11표), 양혜규(9표), 이용백(9표), 전준호(6표)가 선정됐다. 이 중 정연두와 이용백은 ‘해외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작가’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한편 2000년 이후 ‘한국 미술 7대 변화와 이슈’를 묻는 질문에는 ▷미술 시장의 영향력 확대 ▷중국 현대미술의 부상 ▷미술 비평의 침체 ▷대안공간의 출현과 활성화 ▷박수근ㆍ이중섭 위작 시비 논란 ▷신정아 사건 등을 꼽았다. 응답자들은 2007년 한국 미술계가 최대 호황을 누리며 미술 경매의 최고가 바람, 블루칩 작품 부상 등을 불러왔으나 위작 파문 등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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