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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올림픽 특별전 큐레이터 이지윤,"미술은 thinking!"
<이지윤-런던 주재 독립큐레이터>

현대미술 기획사무실 ‘숨’(SUUM)을 설립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 중인 독립 큐레이터 이지윤(Jiyoon Lee, b1969~)은 런던에 산다. 남편과 17살, 10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올해로 18년째 영국에서 살고 있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2012 런던올림픽’(7~8월) 기간에 IOC 주관으로 열릴 ‘미디어아트 특별전’ 기획과, 내년 1월 BFI(영국국립영상원), 파이낸셜타임즈(FT)와 함께 ‘삼성 Art+Prize’를 선보이기 위해 연말을 바삐 보내고 있는 이지윤은 올 한해 한국행 비행기를 무려 스무차례나 탔다. 꼬박 11시간에 이르는 항공일정을 40회나 소화한 것. 마치 ‘서울-수원’쯤을 오가듯 ‘서울(인천)-런던’을 왕복하며 일년의 절반은 런던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 뉴욕 베를린 앤트워프 등을 훑으며 각종 현대미술 프로젝트와 조사, 강연, 컨설팅을 이어갔다.

특히 올 여름과 가을은 숨막히게 바빴다. 불과 사흘 사이에 런던-서울-대구-광주를 왕복한 적도 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축하하는 삼성의 미디어아트 전시 ‘꿈_백야’와,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이 주최한 ‘2010 아트광주’의 총감독을 동시에 맡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힘들다’며 한숨을 몰아쉴텐데 그는 늘 웃는 얼굴이다. 상냥하고 당당하다. 남몰래 ‘긍정표’ 특수비타민이라도 조제해 먹는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 뿐인가? 모든 질문에 토씨하나 틀리지않고 똑 부러지게 답한다. 갑자기 이벤트의 사회를 맡겨도 조리있게 이끈다. 글도 물 흐르듯 잘 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을 이야기해준다던가? 빈틈없는 답변이 나오기까지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갈고 닦아왔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긍정과 내공’이란 이럴 때 써야 할 단어가 아닌가싶다.

그는 현대미술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지만, 미술을 단지 ‘예쁜 그림이나 조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은 그 이전에, ‘새롭게 사고(thinking)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이야말로 ‘창조산업의 근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정책과 경영에도 관심이 많다. 미술사와 예술경영을 함께 공부한 그는 예술가들이 활동할 무대를 잘 조성하는 것도 작품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지윤은 사람들이 ‘창조산업’에 대해 물으면 영국 창조산업의 성공사례를 들려준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가브랜딩을 맡고 있는 런던 소호의 작은 광고업체를 소개한다. 젊고 엉뚱한 기획자와 디자이너 20명이 포진한 이 회사와 미팅을 갖기 위해 사우디 왕자는 수시로 런던을 찾는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조언을 하고, 어떤 영감을 주길래 한 국가의 왕자가 작은 광고회사를 찾는 걸까? 이에대해 이지윤은 “런던은 다양한 시각경영 컨설턴트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마치 샘물에서 샘이 퐁퐁 솟아나듯 끊임없이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귀뜸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1992년부터 창조적 문화예술산업을 가장 유망한 미래산업으로 보고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같은 말을 들으니 이 가냘프고, 똘망똘망한 한국 여성이, 지구 반대편 런던에서 혁신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리도 자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또 그를 만나기위해 많은 이들이 런던을 찾고 있구나하고 고개가 끄떡거려졌다.

한 해의 끝자락인 성탄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이지윤은 요즘 심한 몸살 중이다. 신묘년을 가열차게 달려온 끝에 ‘덜컥’ 탈이 난 것이다. 안전한 교수직도 마다하고, 미술관 스텝으로 한 곳에 적을 두기보다. 거친 광야를 외롭게 누비는 유목민처럼 악셀레이터를 세게 밟으며 창조산업으로써의 미술의 중요성을, 그 미묘하고 설레는 세계를 설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큐레이터가 되기 전의 이력이 독특하다.

▶뮤지컬 배우였고, TV생방송 리포터였다. 이런 이력을 이야기하면 다들 못믿겠다는 표정이다. 고 3때까지 성악을 공부했다. 성악콩쿠르에도 도전했었다. 고교시절에는 뮤지컬 ‘가스펠’에 출연했고, 대학 2학년 때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무대에도 섰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영어, 불어도 좋아해 연세대 불문과에 들어갔다. 방송 리포터는 대학 졸업반 무렵 우연한 기회에 하게됐는데 “썩 잘 한다”는 칭찬에 신이 나서 제법 오래 했다. ‘서너달쯤 하겠지’했던 게 10개월을 했고, 결혼을 하며 런던 유학의 길에 올랐다.

-대학 졸업후 예술 경영대학원 MBA코스를 밟을 계획이었다는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연세대 시절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불어 연수를 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루브르로 달려가 살다시피 했다. 문화의 힘에 매료됐고, 건축과 미술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1990년 미국으로 연수를 가선 뉴욕의 뮤지컬과 미술관을 열심히 훑었다. 그러면서 “여기,이 뉴욕 한복판에 꼭 한국 것을 소개해야지...”하고 다짐했다. 거창하다 못해, 좀 뜬금없는 꿈이었지만 아시아와 서양이 문화적으로 교류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 GMAT를 거쳐 미국 대학 중 MBA에 예술행정과가 있는 곳으로 유학하고자 했다. 그러던 게 런던행으로 바뀌면서, 런던의 유명 미술대학인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미술사 디플로마와 석사를 마치게 됐다. 하지만 박물관미술관 경영학을 꼭 공부하고 싶어 런던시티대에서 일종의 예술MBA 과정도 다시 밟게 됐다.

윌리암왕자 주관의 자선사진전에 기획자로 참여한 이지윤씨

- 석사학위가 두 개인데 박사논문까지 썼다. 향학렬이 대단하다.

▶아니다. 공부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학자의 역할보다, 미술사를 만드는 현장에서 뛰는 게 더 흥미롭다. 그런데 큐레이터는 감성적인 일인 동시에 연구자다. 영어 큐레이터의 ‘큐라(cura)’는 ‘치료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일종의 치료하는 역할인 것이다. 흔히들 ‘미술’하면 그림만 떠올리는 데 현대미술은 그림 뿐이 아닌, ‘창의적인 사고’, 즉 손에 잡을 수 없는 ‘thinking’이 핵심이다. 그림(작품)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사고를 하려면 그만큼 인문학적, 학술적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2006년부터 런던 대학 중 유일하게 미술사과만 있는 코토드 미술연구원(Courtauld Art Institute)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논문도 썼다. 지금 최종통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그동안 수행했던 작업과 연계된, 실증적인 논문이다.

- 2003년 런던에 숨 프로젝트&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그런데 숨(SUUM)이란 이름이 좀 특이하다. 미술관련 프로젝트와 전시, 연구, 교육을 하는 집단의 이름으론 의아스럽다.

▶처음 2001년에는 ‘art in london’이라는 이름으로,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학생을 대상으로 미술사와 큐레이터쉽을 가르쳤다. 일종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이다. 그러면서 독립기획자로 동서양을 연결하며 다양한 문화교류전을 여는 작업이 함께 ‘숨’을 쉬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큐레이터의 역할이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프로듀서(pd)의 역할이란 맥락에서 ‘숨’이란 이름을 택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글 ‘숨’ 폰트를 보여주며 ‘아름다운 집의 픽토그램’이라고 설명해주면 그들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집이네!”라고 반응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수집가인 악셀 베르볼트를앤트워프에서 취재중인 이지윤씨

-매 여름방학마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당신을 만나려고 런던으로 몰려드는데.

▶2001년 이대생들을 대상으로 첫 수업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30-40명씩 찾아온다. 미술사, 큐레이팅,서구 미술시장에 대해 현장학습을 통해 강의한다. 지난 11년간 이화여대와 연세대를 합쳐 800여명의 보석같은 제자들이 나왔다. 이들 중 벌써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등 다양한 문화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나오고 있어 보람도 느낀다.

- 올해도 뜻깊은 일이 많았을텐데

▶올해는 한국에 숨(SUUM) 사무실을 개관한 이래 처음 맞는 해였고, 서초동에 비영리기관인 ‘아트클럽 1563’을 오픈해 키스 소니어, 리차드 우즈, 실비 오브레이, 히라키 사와 등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않았으나 세계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했다. 하반기에도 비누로 입체작업을 하는 신미경(런던 주재 작가)전시를 열었고, 지난 12월1일부터는 자독 벤 데이비드의 ‘블랙 필드’전을 열고 있다. 또한 모교인 연세대에서 ‘창조산업과 예술경영’을 가르쳤고, 대전 SolBridge대학에서 아시아 경영대생들에게 ‘Creative Work’라는 강의를 시작했다. 영국 웨일즈국립사진미술관에서 최근 열린 ‘Beliving is Seeing’이라는 한국사진전도 큐레이팅했다.

MCM 김성주회장(왼쪽)과 런던에서 촬영했다.

-내년 런던올림픽 기간에 열리는 미디어 아트전에 대해 말해달라.

▶현재 IOC위원회와 긴밀하고 올림픽 정신을 담은 새로운 미디어 전시를 기획 중이다. 세부적인 것은 추후 발표할 것이지만 참신한 전시가 될 것이다. 최근들어 더욱 새로워진 미술언어인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다. 사람들은 미디어 아트라고들 부르지만, 아마 100년후엔 그저 이 시대의 한가지의 미술형태로 불릴 것이다. 올 9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진행한 ’꿈_백야’전 또한 비디오 작품들을 시청 외벽에 프로젝션하지 않았던가.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프로젝트가 요즘은 일상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기획한 전시의 특징이라면

▶지난 10여년간 한국작가를 해외에 알리는 전시를 많이 했다. 목표를 갖고 한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작가와만 일한 건 아니다. 영국및 유럽 작가를 아시아에 알리는 전시 또한 많이 기획했다. 그간 큐레이팅한 국제전은 30여개다.

가장 의미있었던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었나?

▶첫 일이었던 런던 대영박물관 내 한국관 개설에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일(2001), 코펜하겐의 왕립미술관 샬롯텐보그에서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국현대미술 전시 기획인 ‘서울:지금까지(2005)’전, 그리고 2007년 런던에서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이라는 제목으로 한국문화원 설립 기념 개관전 등을 꼽고 싶다. 미술적인 여러가지 담론들을 시도한 다른 전시들도 많았지만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그같은 일들을 해나가면서 한국의 소중한 문화인들, 예를들면 목수 신영훈 선생같은 분을 지근거리에서 뵐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윌리엄왕자(prince of wales, William)가 주도한 왕실행사의 전시기획에도 참여했던데

▶세인트 앤드류스대학에서 한 때 미술사를 공부한 적이 있는 윌리엄 왕자는 어머니(다이아나비)가 후원하던 CRISIS라는 노숙자단체를 돕기 위해 ‘Positive View’라는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 인편을 통해 아시아섹션의 커미셔너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뜻밖이었다. 먼 이국 땅에서 외톨이처럼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않는 손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고, 노숙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국제사진전에 한중일 사진작가들을 엄선해 작품을 출품하도록 했다.

세계적 정상급 컬렉터인 스위스의 율리 시그와 대담 중인 이지윤씨

-왕자가 당시 노숙자와 함께 노숙도 했다고 들었다

▶맞다. ‘노숙자들에게 사진촬영을 가르쳐 재활을 돕자’는 취지에서 왕자가 그들과 하룻밤 노숙을 하기도 했다. 그 사실이 영국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나는 아시아 작가들을 선정했는데 전시 마지막 날, 크리스티 주도로 열린 경매에서 작품이 전부 솔드아웃돼 상당액을 기부할 수 있었다. ‘미술이 이렇게 사회공헌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기뻤다.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니더라. 운동화 체질인가?

▶TV드라마에서 큐레이터는 아주 우아하게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힐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하하. 그랬으면 좋겠지만 정 반대다. 발로 뛰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운동화 인생이다. 단 오프닝이라든가 프로젝트 시연회 등이 있는 날 만큼은 아주 멋드러지게, 패셔너블하면서도 그 전시와 프로젝트에 맞게 입으려 한다. 힘들게 일한 스스로를 위무하면서 말이다. 그런 날 며칠을 빼곤 일년 내내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동분서주 한다.

-빨간 색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렇다. 런던이 우울한 날씨일 때가 많아 빨간 머플러, 빨간 니트웨어 등으로 악센트를 주는 편이다. 흰 셔츠에 빨간 머플러의 코디네이션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다. 빨간 색 머플러나 구두만 보면 눈길이 절로 간다. 참, 녹색도 좋아한다. 빨강과 녹색의 대비,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패션브랜드 MCM을 이끄는 김성주 회장과 가까운 것으로 안다

▶가깝다기보다 회장님을 존경한다. 2006년 내가 런던 아시아하우스에서 기획했던 ’한국미술전’에 오셔서 뵈었다. 멋지고 당당하셨다. 가야 할 길에 대해 선명한 목표와 철학을 갖고 계셨다. 회장님은 예술을 배우고 싶어하셨고, 나는 회장님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싶어 종종 뵈었다. 촌음을 아껴 쓰고, 남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숙여졌었다. “우리는 남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 꼭 성공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아로새기곤 한다.

- MCM 브랜드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작업에도 관여했다고 들었다.

▶회장님께선 MCM이 예술과 협력하고 만나는 걸 아주 흥미로워 하셨고 직접 시도하셨다. 나는 리처드 우즈라는 영국 미술가가 MCM과 손잡고 MCM 핸드백과 액세서리에 리처드 우즈 라인이 만들어지는 걸 기획했었다. 회장님은 연세대에 기부금을 내셔서 연세대 학생 중 우수학생이 런던에서 ‘아트 인 런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하기도 하신다. 참 대단한 선배이시다.

-미술품이 투자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현대미술을 수집하는 것은 ‘투자’ 그 이상의 것이다. 어떤 면에선 금(金)보다 더 좋은 투자일 수 있다. 유명작가의 수작을 원하는 미술관과 컬렉터는 많지만 그 숫자가 한정적이어서 장기적으론 매력적인 투자다. 달러, 유로화 등 그 어떤 것도 확실치않은 반면, 작품은 끝까지 남을 수 있다. 제국은 사라지지만 우수한 예술작품은 끝까지 그 가치를 품으며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제국은 결국 사라지지만 예술작품은 끝까지 계승되는 가치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투자 마인드를 앞세워 구입한 작품은 대체로 적중률이 낮다는 점이다.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컬렉터들을 만나고 있는데

▶한 주간신문의 연재를 맡으면서 세계의 거물 컬렉터를 만나 그들의 컬렉션과 철학을 소개하는 글을 싣고 있다. 스위스의 울리 시그(Uli Sigg), 벨기에의 악셀 베르볼트(Axel Vervoordt), 뉴욕의 머그라비(Mugrabi) 등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컬렉션을 보면서 세계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건 궁극적으로 그들같은 의식있는 컬렉터임을 절감했다. 그들의 집품과 비전, 그리고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유명 컬렉터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미술사가 못지않은 대단한 연구가라는 점이다. 또 필란트로피스트적인 아름다운 정신을 갖고 있는 것도 감탄스럽다. 보통 돈과 안목만 있으면 작품수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작품은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옳은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간다는 사실을 배웠다.

-‘숨’ 프로젝트 & 아카데미의 ‘숨(SUUM)’의 의미는,

▶큐레이터란 ’작품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품을 세상과 소통케하는 일을 도와주는, 기획자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숨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젊은 큐레이터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숨(SUUM)이 만든 서초동 ’아트클럽1563’에 대해 좀더 설명해달라.

▶큐레이팅 기획사인 숨(SUUM)이 새로운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위해 만든 비영리 아트센터이다. 아트클럽1563 탄생에는 산업용 냉각장치 부문의 세계적 기업인 벨기에 하몬(Hamon)그룹 산하 하몬코리아(대표 전금홍)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하몬 사옥을 예술적으로 꾸미는 일을 숨이 디렉팅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교회건물이었던 관계로 1층 층고가 꽤 높아 전시에 최적이었다. 그 너른 공간을 지원받아 아트센터로 꾸몄다. 1563은 서초동 번지수다. 비영리 공간인 ’아트클럽 1563’의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숨(SUUM)은 기업후원 펀드레이징 및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 중이다. 최근에는 하나은행의 ’여성간부및 지점장 문화리더십 코스’인 FINE academy프로그램을 4주간 아트클럽 1563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마지막주에는 김승유 회장께서 이스라엘 작가 자독 벤 데이비드의 멋진 설치작품 앞에서 직접 강의하시기도 했다. 한두해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되는 아트센터가 됐으면 하는 게 소망이다.

-영국및 유럽의 미술문화정책 등 예술정책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던데.

▶미술사를 공부한 큐레이터지만 경영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도 미술경영인의 자세로 모든 기획을 하고 있다. 좋은 작가는 좋은 전략과 정책적 맥락이 뒷받침돼야 배출될 수 있음을 절감한다. 그렇기에 예술정책 및 미술정책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지난해 ’유럽문화정책 강국 시리즈’란 글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과연 어떤 정책이 국가의 창조산업의 근간인 아트(art)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자 연구였다.

-요즘 런던의 ‘숨’ 사무실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 가.

▶우리는 계속해서 글로벌 큐레이터 사무실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현대미술전시기획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리버풀 A파운데이션의 디렉터였던 마크 워가 디렉터로 조인하며 더욱 활발히 움직이는 중이다. 지난 1년간 노력한 끝에 삼성전자 후원으로 ‘ART+ PRIZE’라는, 미디어 작가의 작품을 지원하는 상을 만들었다. 10명의 영국 노미네이터(선정위원)에 의해 뽑힌 작가 30명 중 10명을 선정해 런던의 BFI에서 전시를 할 것이다. 그리곤 국제심사위원인 독일 ZKM미술관 디렉터, 테이트모던 영상큐레이터, 재미작가 김수자 씨, 파이낸셜 타임즈(FT) 편집장이 최종수상자 3명을 뽑아 시상하게 된다. 숨은 이 모든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술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미술계에는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다. 큐레이터 외에도 국제적인 미술전시의 홍보및 마케팅, 예산확보, 교육및 섭외, 작품수복, 액자제작, 공간연출, 미술품 전문보험, 미술품 평가, 온라인및 모바일 기획 등 참 다양하다. 문화산업 안에 어떤 직종이 있는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 고정관념을 깨면 전혀 새로운 일(job)도 스스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후배들이 큐레이터를 꿈꾼다. 큐레이터는 기본적으로 학예연구자다. 조사하고 연구하는 연구직이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 맞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큐레이터들의 다양한 창의적 사고에 바탕한 개념들을, 여러 문맥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가 아주 많아졌다. 기업 문화마케팅, 신상품 개발, 다양한 문화아카데미, 크게 확산될 컬렉션 경영 등 다양한 직종이 있다. 이런 새로운 직종이 확산될 수 있는 것은 아트가 모든 창조산업의 핵이 되는 ’오리지널 컨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의 세계는 이렇듯 무궁무진하다.

글=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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