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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방서 중심으로…K-Art 표절 표적이 되다
印尼 작가, 권경엽 화백 작품 ‘베끼기’ 논란
구도·색채·표현 등 판박이

권 화백 측 이의 제기에

“난 당신의 팬” 황당 답변만

미술한류 위상에 모방 급증

정부차원 지재권 보호 시급



한국 미술가의 작품은 다양하면서도 참신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미술이 세계 곳곳에서 표절, 또는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붕대를 칭칭 감은 순백의 소녀를 그려 ‘붕대화가’로 불리는 권경엽(36)은 최근 한 외국인으로부터 “인도네시아의 화가가 당신 작품을 표절한 것 같다”는 제보를 접했다. 이에 사실 확인을 해보니 대니 킹 헤리안토(31)라는 작가가 권경엽 작업과 거의 흡사한 ‘Bandage’ ‘Rise up’(2011년 작) 등의 작품으로 싱가포르의 아트프론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그림은 지난 2009년 권경엽이 개인전을 통해 발표한 ‘Adios’ ‘Oblivion’과 구도, 인물표현 등이 너무 흡사했다. 헤리안토는 또 ‘Talk a little’이라는 작품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Zhong Cheng 옥션에도 출품했다. 이 또한 권경엽 작업과 매우 유사해 표절이 의심됐다.

이에 권경엽은 싱가포르 갤러리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 두 작품 간 유사점을 갤러리 웹사이트에 조목조목 밝혔다. 그러나 왓슨 탄 디렉터는 “권 작가와 대니의 작품에 유사점은 없다. 대니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게시글을 삭제하겠다”고 반박했다. 인도네시아 작가 또한 권경엽에게 “나는 당신의 팬이다. 친구가 되고 싶다”고 되뇔 뿐 문제제기에는 나 몰라라 했다. 권경엽은 한국과 중국, 홍콩을 무대로 활동 중인 유망작가로,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1000만~23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개인전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작품들이 인기리에 판매됐다.

권경엽 외에도 권오상, 이이남, 이정웅 작가도 해외에서 작품이 심대할 정도로 모방 또는 표절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권오상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인 ‘데오도란트’ 연작을 독일계 미국 작가 올리버 헤링(Oliver Herring)이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논란으로 그쳤다. 심지어 일각에선 ‘권오상이 헤링의 작업을 표절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사진 300~500장을 이어붙여 대형 조각을 만드는 권오상의 작업이 1998년부터 시작됐고, 헤링은 2004년에야 그 같은 작업을 선보여 이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작가는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이 같은 표절논란에 대해 미술평론가 홍경한 씨는 “권경엽과 헤리안토의 작품은 구도와 색채, 인물표현에서 유사점이 많아 표절이 의심된다”며 “그러나 작가가 시인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가려야 하는데 국제소송에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대응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외국 작가가 한국작가 작품을 표절하거나 심하게 모방한 사례가 수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패러디라고 우기거나, 유야무야 끝났다”고 덧붙였다.

왼쪽은 한국 작가 권경엽의 ‘Adios’, 오른쪽은 인도네시아 작가 대니 킹 헤리안토의 ‘Bandage’. 인도네시아 화가의 작품은 구성과 색채 등에서 권경엽 작품의 표절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한국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 등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가맹국이어서 저작물에 대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표절 여부는 당사자가 시인하지 않을 경우 법적 소송을 통해서만 규명이 가능하다. 결국 외국 로펌을 통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개인이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들은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지며 국제전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작품의 저작권 보호에 국가 및 단체가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작품을 해외에서 발표하는 일로 표절이 빈번해진다면 앞으로 마음 편히 해외 전시를 갖겠느냐는 것이다. 권경엽 작가는 “미술 한류의 힘을 키우는 것은 작품의 저작권 보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보다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가 마련돼 작가들이 안심하고 작품에만 매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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