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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김남조 시인, 소설가 신경숙의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작가의 인생에서 그 작품이 그 시점에 나오게 된 데엔 어떤 필연성이 느껴진다. 그걸 깨닫게 되는 때는 대체로 한참 뒤인 경우가 많다. 당시엔 알 수 없는 것들이 지나온 작품들을 나란히 줄세워 놓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망연함이 인생에서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책장에 오랫동안 붙박여 있던 책을 별 생각없이 꺼내 보게 될 때 드는 생각도 비슷한 데가 있다. 낯섦과 익숙함, 그런 느낌이 교차하는 두 권의 책이 재출간됐다. 시인 김남조의 콩트집 ‘아름다운 사람들’(문학의문학)과 소설가 신경숙의 ‘아름다운 그늘’(문학동네)이다.

김 시인의 콩트집은 1984년 출간됐다 27년 만에 다시 나왔고, 신경숙의 산문집은 1995년 작가 나이 서른셋에 낸 첫 산문집이 새 옷을 입고 나왔다.

콩트집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고요하고 선하며 절실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콩트가 가진 의외의 반전의 즐거움 대신 사람이 주는 감동이 더 크다. 시인은 ‘가려져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얘기를 담백하고 고운 순정한 글쓰기로 담아낸다. 우리 안 한편에 낮게 숨쉬는 아름다움과 선함이야말로 맑게 빛나는 지혜임을 오랜 동화처럼 들려준다. 41편의 짧은 글들은 세월에 바래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지고 빛을 발하는 듯하다.


‘강변이야기’의 엄마는 도시로 공부하러 간 아들이 그리워 마른 장작처럼 말라간다.“보고 싶은 건 말이대이, 장지문도 손 안대고 구멍 뚫어 뿌는거, 그런 거 아이가.” 엄마의 그런 간절함이 아들의 꿈속을 흔들어 마침내 엄마를 찾아오게 만드는 건 불가사의한 게 아니다.

방학 때 내려온 오토바이 청년을 죽을 때까지 그리는 농아 소녀(‘소녀’), 행복하게 솜사탕을 먹는 가난한 새댁의 보물 이야기(‘솜사탕’), 정신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형과 그런 형을 믿고 의지하는 동생(‘어린 형제’), 끊어져도 잊지 못하는 애틋한 부부 이야기(‘연과 연실’) 등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아련하다.

신경숙의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은 깊은 우물과도 같은 신경숙 소설의 원형질이 어떻게 변주돼 왔는지 돌아보는 묘한 시차를 느끼게 된다.

세계적인 작품이 된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그런 엄마의 존재를 엄마의 생의 맥락 속에서 처음 인식한 때, 작가의 최근 단편집 ‘모르는 여인들’ 중 ‘세상끝의 신발’에 등장하는 주인공 낙천아저씨의 존재까지 작가의 주변 인물과 이야기의 조각들이 소설 세계로 어떻게 편입돼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지가 보인다. 작가에게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아무것도 예견할 수 없던 불안하고 예민한 서른셋의 나이, 작가가 일관되게 쓰고자 했던 것, 쓰고 싶었던 것들의 실체에도 닿을 수 있다.

“내가 살아보려 했으나 마음 붙이지 못한 헤어짐들, 슬픔들, 아름다움들, 사라져버린 것들, 과학적인 접근으로는 닿지 못할 논리 밖의 세계들, 말해질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 이미 삶이 찌그러져버렸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욕망, 도처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나, 시간 앞에 무력하기만 한 사랑, 불가능한 것에 대한 매달림, 여기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내 글쓰기로 재현해내고 싶은 꿈”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소설적 행보가 곧게 보인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들어간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내려간 시골집, 가져간 소설들을 한편 한편 그대로 노트에 꾹꾹 필사해내며 막연한 꿈을 구체화시킨 일은 지금 유명한 일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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